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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현실을 잘 받아들이고 대안을 생각해야...

alpine-snow alpine-snow
2824 13 12

저는 원체 성격이 소심하면서도 고집은 세고 또 다혈질이라는 희안한 조합이었습니다. 
자랄 때부터 혼자 뭔가에 몰두하는 성향이었고, 감성적으로는 꽤 여자여자였습니다.
 
이상은 높았는데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제때 찾지 못하여 공부가 좀 늦었죠. 
그리고 또 전공과는 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진로 변경은 불가능에 가까워져가는 나이.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고 바라왔던 삶은 과거 줄기의 먼 바깥에서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버렸고, 
그걸 잡지 못한 회한과 당면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에 정말 많이 괴로워했어요. 

극심한 스트레스와 좌절감에 시달리던 어느 늦은 봄 아침. 

아침에 눈을 뜨는데, 천길 낭떠러지에서 무언가가 제 심장을 꽉 움켜쥐고 당기는 느낌. 
몸이 말을 안 듣고 호흡은 답답하고 식은 땀이 나던 걸 억지로 뿌리치고 출근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너무 우울했고 그 무엇을 해도 우울감이 가시지 않더군요. 
눈만 뜨고 있으면 계속 가슴이 꽉 조여지는 듯한 느낌과 극한의 우울감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약 처방도 받아보았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포기하고 악으로 깡으로 살았습니다. 
 
그 시기에 현실적인 문제로 천연기념물이라 할만한 성품의 여친도 제가 이별통보 했고요. 
결혼은 현실이니, 더 나은 여건의 남자를 찾아가라고... 
제가 걷어찼으니 제가 나쁜 놈이지만, 그 고통은 차였을 때보다 더 크더군요. 
무거운 죄책감이 더해졌고,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 '차버린 사람' 입장이었던지라. 
어느 정도 떨처내기까지는 5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 중 2년간은 아버지의 말기 암 투병과 사별...

최초 발병 이후 만 8년 조금 지났네요. 
이런 저런 악재들만 겪으면서도 악으로 깡으로 버텼습니다.
그래선가 이제 우울감은 만성이 된 채로 살고 있는데, 간간이 패닉이 오더군요. 
우울증에 공황장애가 겹친 거였죠.
아침 기상시 공황 발작이 오면 심장은 쿵쾅쿵쾅, 몸은 말을 안 듣고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호흡도 답답하고요.
 
백날 동동거려도 변하지 않는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 거기서 오는 괴로움. 
과거에서 놓치고 온 것에 대한 공허감과 거기에 대한 집착.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기대의 좌절...

오만가지를 혼자 떠안고 고뇌하다 보니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영역에 들어와버린 것이지요.
들어오는 건 쉬이 들어와지지만 빠져나가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이젠 하나 둘 놓아버리고 하고 싶은대로 조금씩 하며 살고 있습니다만, 
이미 한 번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절대로 이 영역에 들어오지 않도록 멘탈 관리 정말 잘 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맨탈 용량이 제각각이라, 남이사 나보고 멘탈이 약하디 말디 뭐라하건 말건 
내가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견뎌야 한다고 봅니다. 
다 떠안고 혼자 앓으며 버틴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습니다. 
요즘 같은 세태에, 더더욱 마음 비우는 연습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길고 길었던, 악으로 깡으로 의지로 버틴다는 쌍팔년도 방식을 버리고 
SSRI에 패닉 약을 다시 처방받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만으로는 개선될리가 만무하고, 마음도 하나 둘 비우려 더 노력하고 있어요. 
마음 속 공허함만큼은 큰 공동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허전합니다만, 
우울함이나 패닉은 한결 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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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kz Mmkz님 포함 13명이 추천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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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저도 어제 오랫만에 사람들에 치여서 공황발작이 왔었네요. 글만 봐도 얼마나 얼마나... 힘들지가 상상이 되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의 경우는 8년간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우울장애, 공존하는 공황장애와 불면증... 닮은 면이 많아 보입니다. 
 
약을 꾸준히 드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SSRI도 좋지만, 약을 몇달 이상 썼는데도 잘 안 맞는 것 같다면 SNRI(desvenlafaxine같은...)나 세로토닌에 다중 기전으로 작용하는 vortioxetine같은 약이나, 다른 보조 치료제를 추가하는 것을 시도해보자고 이야기해보세요. 
 
생각보다 믿을 사람이 주변에 심지어 가족까지도 없지만, 그럼에도 주변에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은 주변에 찾아보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무언가 alpine-snow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같이 잘 견뎌내서, 꾸준히 좋은 쪽으로 관리하고, 기분 좋게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12:29
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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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inα
제 생각에 이런 우울장애같은 것들은 약물치료 + 상담치료 + 주변 사람들의 정신적 지지가 모두 밸런스가 있게 맞춰져야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돈이 조금 들어도 주에 1번씩 상담을 받아보실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아버지의 암 투병 후 돌아가셨을 때 멘탈이 정말 심각해졌던게 생각나서 너무 남 일 같지가 않네요.
12:32
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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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ine-snow 작성자
Luminα
저는 주변에서의 정신적인 지지는 기대하기 함든 상황이네요.
스스로 자꾸 다잡으려고 하고 있어요. ㅋ

헤이즈님도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었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암 투병은 정말 길고 긴, 애착과 죄책감을 오가며 정신을 갉아먹으며
가족 모두가 힘든 고난이더군요.
19:16
22.07.24.
profile image
Luminα
그리고 이 분야는 원래 자기에게 맞는 약의 조합을 찾아가는 길인데, 오랫동안 치료를 안하거나 그럴수록 더 그 길이 힘들고 완전히 '관해' 상태(약만 먹으면 완전히 증상이 없는 상태)가 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빠르게 치료를 잘 받아야하기도 하구요.

혹시 뭐 (의사에게 물어볼 것이 아닌) 궁금한 점이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거나 하면 언제든 편하게 쪽지로 연락주세요. 연락처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말 많은 부분들이 저와 비슷한 것 같아서... 너무 남 일 같지가 않네요.
12:50
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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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ine-snow 작성자
Luminα
관심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혹시나 여의치 않으면 염치 불구하고 문의도 드릴게요. ^^;

우울장애, 공황장애는 이상하다 싶을 때 바로 정신과 가는게 맞더군요.
여자여자한 멘탈에 남자 아이가!! 남자는 깡이다!! 이러면서
그냥 버텼더니 그만 고질병이 되어버리네요.
19:21
22.07.24.
profile image
alpine-snow
https://www.mimint.co.kr/bbs/view.asp?strBoardID=tvnews&bbstype=sports&bidx=243910
요즘 화제가 된 격투기선수의 인터뷰인데, 감동적이고 슬프고 안타깝더라고요. 어떻게 도움이라도 될까 하는 마음에서 가져와본것 같습니다. 하시는 일 모두 술술 잘 풀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2:06
22.07.25.
profile image
alpine-snow 작성자
Luminα
항상 악에 받쳐서 흥분 상태로 있으면서 우울감에 짓눌리지 않으려 아둥바둥 했었어요. 그러면서 소심함은 벗어냈지만, 쌈닭이 되더군요.

이젠 제 자리를 자연스레 되찾고, 약의 도움도 계속 받으려 합니다. ^^

위로 말씀 매우 감사드립니다!!
19:13
22.07.24.
profile image 2등
저도 뭐 haze 님이 언급하신 SNRI 먹고 있습니다. 먹고나서 다시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붙을정도로 ㅎㅎ
18:14
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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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ine-snow 작성자
Imfinzi
도저히 안 되면 약 처방 받는게 맞는 것 같아요.
깡으로 버틴 사이에 몸과 마음이 넝마조각이 되어있더군요.
19:22
22.07.24.
profile image
Imfinzi
프리스틱 동지시군요. 효과가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D
19:58
22.07.24.
profile image 3등

저는 상시 처방은 아니긴한데,
분기 단위로 약과 상담은 받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욕쟁이 할머니(?) 같은 멘탈이다보니
구시렁대면서 해주고 자기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쪽이라 
약은 필요할 때만 사용하라고 권해주더군요.
(다만 건강검진 스트레스 수치는 검사하면 최악이긴 하던데요..ㅎ)

얼마전에 alpine님 우울해 하시는데, 
별다른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글을 보니 생각보다 더 힘드신 상황이셨네요.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경우
원래 힘내라는 말이 좋진 않다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상담과 약물 치료도 잘 받으시고, 
힘을 받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__)

09:50
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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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ine-snow 작성자
Gprofile
저는 진작에 지속적으로 치료했어야 했는데, 깡으로 버티면서 곪아터진 셈이죠. ㅋㅋㅋ

저는 무지막지한 우울감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미친 척 웃거나 화를 내고 흥분했는데,
이게 나이가 들면서 다시 짓눌리기 시작하더군요.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투정은 투정대로 다 받아주면서 극도의 스트레스까지 겹쳐
스스로 돌볼 시간이 없는 사이에 병이 도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동년배들에 비하면 어깨가 가벼운 편이니 마음 편하게 가지자며 위안 중입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드려요!!
이걸 깡으로 버틴 세월이 있다 보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ㅋ

사실은 유사한 어려움을 안고 계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해서 글을 썼는데,
행여나 실례가 되지는 않았을지 하는 노파심도 조금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각자 스스로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21:49
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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