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 주 초부터 머리에 피가 아주 그냥
이번 주는 정말 월요일부터 해서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인간은 본래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인 걸까요?
내가 고통스럽지 않거나 그에 대해 무지할 때는 본능적으로 고통을 줄 타인을 찾아다니는 존재인 걸까요?
성선설이 옳구나 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람도 있는 반면,
아니야 역시 순자가 옳았어 하게 생각토록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편적 가치가 문학이 담아야할 지고의 덕목이라고 하는데,
저는 대체로 문학을 멀리하는 편이지만 인간의 선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품이라면 읽어보고싶어집니다
요즘 진짜 위아래 사이에 껴서 죽을 맛이네요
어떻게 된 게 이 망할 도시에서는 끝까지 좋은 기억이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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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Write하지만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다른 모든 것과 구분지어 별격의 존재로 놓으면서 그 안에서만 지배와 피지배 혹은 종속의 관계가 형성되었고 근현대 꽃피운 인본주의는 만인의 동등한 가치를 주장하는데, 이 모순을 선악이라는 개념만큼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 잘 없을겁니다
저는 집단의 욕망이 개인의 욕망을 악이라 칭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위 영화는 안과 밖, 고지대와 저지대, 가벼움과 무거움, 이해와 몰이해의 괴리에서 상처 입고 방황하는 짐승이 악으로 관측될 뿐이라고 표현한_거 같습니다
- 즉 Plamya님!
2. 전 인간은 선하다고 믿는 쪽이지만,
사회가 그걸 썩 허락하진 않습니다. 아쉽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태생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순자가 말하는 것처럼 선함을 갈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믿지도 않으면 진짜 ㅎㅎ
다만 성악설이라기 보단 원래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 우선되다가 사회적 환경으로
개화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도, 사람이 악하던 사회가 악하던 뭔가 납득가는 설명이 있으면 제 마음도 편해질 거 같은데 말입니다ㅠ
부산요? ㄷㄷㄷ
타인의 처지를 들여다보거나 고려하지 않는 인간은 개인적으로 멍청하고 덜떨어진 탓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능이 딸리는 거죠.
학자들의 의견은 전자(선악이 인간이 부여한 개념일뿐, 저들 생존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에 동의하나 후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네요. ㅎㅎ 두 Excerpt를 첨부합니다.
인류는 오랜 역사 끝에 근 대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인간을 존엄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회계약을 이루어냈고, 이것이 문명국가의 헌법 이다. 신이 어떤 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 떠한 본성적인 특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의 존엄함을 인정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기 초로 하는 사회가 성립되었고, 이러한 약속은 비록 현실에서 완전히 실천되고 있지는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소중하다. <문유석, 최소한의 선의>
나의 목숨을 구한 당신의 영웅적 행동은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사실은 자유의지의 발현이 아니라 물리 법칙을 따른 것뿐이다. 그러나 당신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갑자기 벤치를 박차고 튀어 올라 사람을 구하고, 훗날 그 행동을 회고하면서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위에 뭉쳐 있는 입자들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 (자유)의 본질은 바로 이런 사고와 느낌, 그리고 행동에 깃들어 있다.
... 나는 개인적으로 이 '다양한 자유'에서 큰 위안을 얻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내 몸을 구성하는 입자에 물리 법칙이 적용된 결과이며, 나는 그 법칙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려도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 몸의 입자들이 의자나 머그잔의 입자와 달리 엄청나게 다양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문장을 쓴 주체는 내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입자이며, 나는 이런 현실에 아무런 불만도 없다. 물론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입자들이 양자역학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면서 나타난 결과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나의 느낌이 퇴색되지는 않는다. 내가 자유로운 것은 물리 법칙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거대한 내부 조직이 나로 하여금 자유롭게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그린, 엔드 오브 타임>
(첨부한 까닭 : 고지능자도 종종 어리석은 행위를 하듯, 특정인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행위를 하게 할 법한 환경에서 그렇게 하게 할 법한 사람을 만나며 자라면 얼마든지 어리석은 행위를 할 수 있음 - 사실상 예정된 것이라는 말)
단죄라는 것 또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그런 것에 이 세상은 관심이 없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필귀정 이라든지, 인과응보라든지 하는 것들은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고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생각하고 있고요.
제법 비관적이지만 그 또한 저의 개인적 관점입니다. 학자들의 의견과는 무관하지요.
율곡 이이 선생은 신독을 강조하셨다.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마음가짐까지 포함한다. 인격 수양을 위한 자세로는 훌륭한 말씀이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자기억제를 요구하는 잔인한 말씀이다. 매 순간, 마음속으로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불경스럽지만 율곡 선생조차도 홀로 있을 때는 온갖 찌질하고 부끄러운 생각을 하셨을 거라는 데 오천 원 지폐를 건다.
그것이 성평등이든, 소수자 보호든, 동물권이든, 환경 보호든, 일본 상품 불매든. 그 어떤 가치라 해도 이에 반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혼자 있을 때 무슨 짓을 하며 사는지 엿보고 폭로하고 낙인찍고 너의 생각을 밝히라고 질문을 해대는 행위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 개인의 마음속은 절대적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를 내심의 자유라고 한다. 양심, 사상, 학문, 종교, 그 어떤 생각이든 개인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을 때는 국가나 사회가 이를 규제할 수 없다. 이를 ‘내면적무한계설’이라고 한다. (문유석, ‘최소한의 선의’ 중)
말씀처럼 센티베어님께서는 개인적 관점을 학자들의 의견과 무관하게, 심지어는 사실과 무관하게 갖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존중됩니다. 저는 센티베어님의 말을 듣고 보니 비교적 비관적인 세계관을 갖고 계셨음에도 불구 정의감을 품고 계셨다는 데 놀라게 되었고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인간사회에 희망을 갖고 있고, 단죄는 길든 짧든 알려진 모든 죄상에 대해 이뤄지게 되어 있으며, 세상 또한 사필귀정과 인과응보에 관심이 많다 생각하거든요(그리고 그 증거는 느리고, 때로 역행하기까지 했지만 전체로 보면 분명히 이루어졌던 인간사회의 진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평소에 하던 생각에서 정의감이 자연스럽게, 따라서 쉽게 우러나오는 반면, 센티베어님은 본래 회의적인 세계관에도 불구 정의감을 잃지 않고 있는 거죠.
세상은 어쩌면, 아니 반드시 그걸 좋게 바라볼 수 없으면서도 여전히 낫게 만들고 싶은 생각에 완전히 관심을 놓아버리지 않는 사람들 덕분에 더 나아지고 있는 걸겁니다. 그치만 조심스레 너무 회의적으로 바라보시지는 않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이 나아져야 하지만 저도, 센티베어님 개인도 행복해져야 하는데 어느 정도 이상의 회의론은 첫째로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둘째로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관적이라고 제가 표현하였습니다만 그것이 반드시 세상을 회의적으로 본다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닙니다. 이 세상이 사필귀정과 인과응보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 가치들이 세상에게 무시당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저 그것들이 세상의 관심분야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세상=대자연=우주는 어떤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정의라는 지극히 인간적 개념을 "감히" 대입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컨대 지구가 자전하는 데에는 그 어떤 인간의 가치판단도 적용될 수 없는 것처럼, 정의라는 것 또한 우주적 관점에서는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당장 내일 어떤 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전 인류가 멸망한다면, 인간으로서는 그것이 큰 시련이고 비극이겠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하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겠지만, 아마도 그들을 납득시킬 이유 따윈 없을 겁니다. 사실은 그저 궤도가 그렇게 맞아떨어졌을 뿐이었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저는 인류애도 없고, 정의구현에 대한 기대도 딱히 없습니다. 그건 저에 대해 짐작하신 비관적, 회의적 관점과는 조금 궤가 다릅니다.
물론 한 인간으로서 우주적 관점에 매몰되기보다는 사회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긴 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사고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한 몰입으로 허무주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이러한 시각 또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나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실 속에서 희망은 꺾이기 쉽고, 기대는 하지 않았을 때에 더 큰 보상을 주거든요. 특히 마음을 추스리기에 참 좋습니다. 사람이 담대해진달까요? 이런 마인드를 타인에게도 추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그러나 저는 절대로 그 어떤 것도... 요청하지 않는 타인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내가 늘 옳지는 않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고,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마인드 같은 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저는 비록 그 어떤 기대감은 없다 해도 이 사회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요. 또한 정의가 구현되면 좋다는 생각도 당연히 하고요. 어느 부분에서 저의 정의감을 느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저에게 정의감이라는 것은 그런 차원입니다. 그 가치 자체가 옳아서, 라기보다는, 그게 되어야 상처받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로드러너 님은 본인이 행복해야 된다 생각하시는 것은 당연히 존중하지만, 굳이 제가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행복하면 좋죠... 허나 제가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저의 삶에 앞으로 일련의 일들이 벌어질 테고, 그것이 저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다 보면 저는 또 거기에 이렇게든 저렇게든 반응하면서 살아가겠죠. 거기에는 그 어떤 의도적 결과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행복에 도움이 되든 안 되든 말이죠.
그저 가볍게, 행복하세요~ 잘 될 겁니다~ 라는 식의 인사 정도라면 제가 이렇게 반응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장문의 댓글에 나름 본인의 철학을 담아 말씀하신 것 같아 저도 속내를 드러내 반응하는 것임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1. 아무리 저명한 학자의 의견이라도 그 학자의 의견이라는 사실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 반드시 필요한 자세입니다!
2. 현실 속에서 희망은 꺾이기 쉽고 기대는 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보상을 주므로 마음을 추스리기에 참 좋다 - 사실입니다. 한계가 있다고 아니 할 수 없겠지만 사회 속의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데 참으로 실용적인 자세기도 해요.
3. 상처받는 사람들(저는 그 앞에 '무고한,'을 덧붙이고 싶습니다만)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지 않는 방식이 옳은 방식입니다. ㅎㅎ
4.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심지어 세상의 갖가지 권리장전에 등장하는 행복에 관련된 권리도 '행복추구'권이지 '행복할 권리'는 아니지요. 다만 저는 센티베어님이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건 제 입장입니다(우주의 어떤 입자들이 우주적 시간에 단 한번, 그것도 인간 센티베어님으로 뭉쳐서 세상을 구체적으로 지각하게 되었고 행복도 느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지 못한다면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센티베어님이 받아들일지 말지 모든 걸 주체적으로 판단하신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그러시리라 믿고 제 의견을 말씀드린 것이지요. 속내를 드러내신 반응은 이해를 백 번 하고도 남음입니다. 다만 저는 센티베어님처럼 생각이 깊은 분께는 특히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러듯 대충 반응하고 넘어가지 못하겠더라구요. 행복하세요~ 잘 될 겁니다~ 같은 데서 멈추지 못해요. 저런 놈도 있구나, 사람 참 별나다 하고 양해해 주시길 바라야겠지요. ^^;
프롬이 1973년부터 1980년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던 로카르노에서 내가 그의 조수로 있었을 때, 그는 내게 아주 간단명료하지만 정확히 정곡을 찌르고 차츰 심도 깊어지는 질문들을 자주 던졌다.
... 사실 프롬은 상대가 본래는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질문만을 했다. 그런 질문들은 어쩌면 나를 시시하게 보이게 하거나 부끄럽게 했을지도 모르므로 나는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 프롬은 내가 회피하고 억압하고 무시했던 질문들을 던졌다. 프롬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소통의 특별한 점은, 프롬이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보이며 그를 대신하여 직접 질문을 던짐으로써 직접성과 친밀성을 형성한다는 사실이었다. 질문은 날카로웠고 상대를 강하게 자극했다. 자신을 변호하려는 주장과 거짓 이유를 계속 댈 경우에는 캐물었다.
- 라이너 풍크, <에리히 프롬의 삶과 사랑> 중,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발췌
(혹시해서 남기면 이건 결코 센티베어님이 저자의 입장에 있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제대로 대화하는 순간 속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타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사실 고마운 것이지요. 비록 상대가 거기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들 말입니다. 당연히 멈춰주세요! 의 의미는 딱히 아니었고 저의 가치관에 대해 공유드린 것뿐, 이후로 로드러너님이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시든 제가 관여할 바는 아닐 겁니다.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역으로 저는 이러한 저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도 지속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좀 다르다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앞에 붙기 위해서는 저와 같은(비슷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전제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네, 핵심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겠지요.
원글 작성자님께 송구하니 이만 접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번에 더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 나누시지요.
그런데 사람이란 게 인지자원이라든지 한계가 있어서 일상이 바쁘고 고되면 남을 위해 생각할 짬이 없어집니다. 그러잖아도 얼마 없는 여유시간에 남 기분, 나아가서는 나음, 옳음 등등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돼요. 슬프군요 ㅠㅠ
고생이 많으십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성실하게 생각해서 Plamya님 같은 피해자를 낳지 않길 바랍니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어른이 된 사람은 고쳐서 못쓰더라구요. 남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과 일하는 건 정말 끔찍한 경험입니다. 벗어날 수 있을때 빠져나오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구요.
인간은 잘 안 바뀌는거 같아요.
저도 성악설을 지지합니다.
성선설이 사실이라기에는 너무 세상이 망가졌어요.
선과 악의 기준이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즉각적"이익을 우선하느냐(악)
아니면
개인의 "보류된"이익을 우선하느냐에 따라(선)
나누고 있습니다.
결국 개인의 이익과 쾌락을 쫒는 것이 핵심인데
즉각적으로 그 무엇도 개의치않고 내 이익만을 쫒는지
(결과 많은 해를 양상합니다. )
아니면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나도 이익이 되고 다른 사람도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거나 기다리는지에 따라..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부가적인 이익(양심..우정..인류애 등등)에 얼마나 가치를 느끼는지에 따라
행동의 양상이 천지 차이로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줄여보면
이기주의가 악이고
이타주의가 선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겠네요.
그 외에 따로 정해진
효도라던가 애국 및 기타 등등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에게 강요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이타적이면 대부분 선에 들어가더군요.
이타주의나 하다못해 지연된 만족이 안 되시는 분들이 악인인거죠. ㅎㅎ
어른이 되면 어렸을 때 배운 절대 선/악의 개념은 없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돼죠. 자신에게 유리하면(혹은 신념에 부함하면) 선, 불리하면(신념에 반하면) 악이라고 보통 생각하죠.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그들도 함께 불편하다고 느끼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아니라면 장차 그렇게 될 거라고 불안감을 심어줘야 하는거죠.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가스 라이팅 할 방법을 찾아봐야죠.
살다보니 그냥 사바사인거 같아요.
살다 보면 저 처럼 꼴뚜기로 위장한 사악한 이들도 있고(응?)
천성적으로 말도 안되게 선한 사람, 때려잡아도 악한 사람도 있는데...
자연계로 보면 피식자와 포식자 같은 느낌이랄까요. ㄷㄷㄷ
요거 스크린샷 갑니다.ㅋㅋㅋㅋ
본능적인 자학적 방어기제였슴미다 ㅠㅠ...
정말로 여성 분들이 다 도망가셨기에 틀림없는 꼴뚜기라고 생각했지요. ㅠㅠㅠ
悪は存在しない;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3) dir. 히마구치 류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