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하이저 HD 800 S : 내 인생의 헤드폰 (1부)
목차
1부
1. 들어가며
2. 구성
3. 외관 및 착용감
4. 청음기
2부
5. (내 멋대로)탐구
6. 결론
1. 들어가며
HD 800 S는 젠하이저의 플래그십 헤드폰으로, 2015년에 HD 800의 후속작으로 시장에 출시된
이래 만 9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변함없이 기함급 헤드폰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해 온 모델입니다.
저를 음향판으로 이끌었던, 친구가 던져주었던 MX400. 근데 문득 생각해보니 이 녀석이
이것만 안 던져줬더라도 그간 돈이 얼마나 굳었을지... ㄷㄷ
안 입고, 안 쓰는 일상을 몇 달씩 보내야 겨우 HD 650을 살 수 있던 시절, 제게 HD 800 S(이하 팔스)는 로망 그 자체였습니다. 제 음향취미의 시발점이 됐던 MX400의 제조사이자 그 어떤 회사 못지않은 근본력(?)을 뽐내는 젠하이저(이하 젠하)의 명실상부한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팔스는 무려 그 공간감 최강자 HD 800(이하 흐드팔)의 후속작이었던 것입니다.
흐드팔이 출시되고 소리평이 하나둘 전해지던 시절이 생생합니다. 그 오르페우스와 HD 600, 650의 제조사가 어마무시한 신설계를 적용해 돌아온 차세대 플래그십 헤드폰이지만 사실 당시의 국내평은 그저 그랬습니다. 공간감이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고음이 쏘고 저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혹평이 지배적이었어요. 오죽하면 650의 상위기가 아니다, 아니 650만 못하다는 평가도 있었을까요. 그래도 제 선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셰에라자드 등지에서 잠깐씩 들어본 게 전부지만, 청음해본 바 흐드팔에게는 실제로 기존의 어떤 헤드폰에서도 맛볼 수 없는 공간감이 있었고, 그거만으로 값어치를 하는 헤드폰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게 좋은 이어폰/헤드폰이란 많은 제조사들이 내세우는 문구처럼 스피커의 소리를 잘 모사한 제품인데, 그렇다면 흐드팔만큼 거기에 부합하는 헤드폰이 또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었죠. 또 이미 그즈음부터 좋은 이어폰이 쏟아지며 이어폰과 헤드폰의 체급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던 중에(요새는 톤밸런스나 정교한 소리결에서의 우월함을 논하며 이헤폰 사이의 소위 체급차를 모르겠다는 의견도 꽤 많더군요) 흐드팔의 압도적인 공간감이 벌리는 이어폰과의 체급차는 다른 헤드폰이 갖지 못하는 차별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흐드팔을 젠하가 5년만에 개수해서 내놓는다? 그것도 저음을 적절히 보강하고, 다소 무게감이 없어보이는데다 쉬이 까지기까지 하던 밝은 은색의 외관을 어두운 톤으로 새단장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대감이 차올랐지만, 사실 그렇게 세상 빛을 본 팔스도 막 평가를 반전시켰냐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많은 유저들은 이번에야말로 팔스가 모든 면에서 650의 완전한 상위호환이 될 것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6k 피크가 줄어들고 저음이 보강됐지만 팔스는 어쨌든 흐드팔의 사운드 시그니처를 유지하고 있었고 유저들의 기대는 빗나가고 맙니다. 저는 여전히 이따금 청음샵에 갈 때면 팔스를 빼놓지 않고 챙겨 들었지만 쩐(!)이 없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말에 팔스를 들이게 되었지요.
각사의 플래그십 헤드폰 : 순서대로 Audeze LCD-5, Hifiman Susvara, Focal Utopia(2022)
재미있는 것은, 그동안 위에 적었듯 젠하이저의 플래그십이 맞느냔 소리까지 나오던 팔스에 대한 평가가 점차 호전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네,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바로 팔스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우상향해 왔습니다. 그것도 유토피아 OG와 유토피아 2022 같이, 동일한 DD 오픈백 헤드폰이면서 출시하자마자 즉각적인 호평을 이끌어낸 제품을 비롯해 갖은 회사들의 갖가지 기술들이 접목된 플래그십 헤드폰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뭐, 팔스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는 했어요. 각사의 플래그십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고가로 나오는 동안 정가가 상대적으로 덜 오른데다 젠할인저가 꾸준히 활약해준 덕분에. 하지만 과연 그것 하나 덕분이었을까요?
지난 2년간 사용하며 팔스는 정말이지 큰 즐거움을 주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워낙 많았다보니 리뷰를 어떻게 쓸지 고민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이번 리뷰에서 저는 제 인생의 헤드폰이 된 팔스에 대해 크게 2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원래 써오던 것과 비슷하게 구성, 외관 및 착용감, 청음기를 다루고, 2부에서는 제 멋대로 이리저리 탐구해본 뒤, 결론으로 끝맺음을 하려 합니다. 원하던 만큼 완성도 있는 구성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가 최선 같네요(이래서 글쓰기에서는 잡설이 너무 길어지면 곤란합니다 ㅋㅋ). 어쩌다보니 분량이 조금, 아니 아주 길어져버렸지만 팔스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쯤 천천히 따라와주세요. ^^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2. 구성
2022년 10월, 그러니까 저와 비슷한 시기에 구매하셔서 정확히 같은 구성인 영디비 회원 @59호 님의 팔스 개봉기.
시리얼도 같은 4만번대네요.
팔스 구성은 간단합니다. 박스를 열면 하드케이스가 있고, 하드케이스 내에 헤드폰 본품과 천 파우치, 클리닝 천, 6.35mm SE(싱글엔드) 케이블, 4.4 밸런스드 케이블(모두 3m), 사용 설명서가 들어 있어요. 제가 2022년 말에 제 4만번대 팔스를 샀을 때는 측정치가 담겼으며 젠하이저 레터링이 있는 USB(용량 4GB - 젠하이저 USB란 데 의미를 둬야...)를 주었는데, 그새 구성품에서 빠졌습니다.
젠하이저가 USB를 패키지에서 제외하며 내놓은 설명. 납득이 되실지는... 각자의 몫으로 맡기겠습니다.
모 블로거께서 2016년에 올린 개봉기입니다. 은색 플러그의 6.35mm 케이블 및 4XLR 케이블이 눈에 띕니다.
팔스는 벌써 9년이 다 되어가는 제품인 만큼 구성품과 생산공장, 그리고 공정 등에서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는데요. 한 예로 언제부턴가 젠하이저 플래그십 제품들이 다 그랬듯 초기에는 젠하이저 본사에서 제작됐으나 이후로는 아일랜드로 옮겨져 제작되고 있으며, 초기에는 4XLR 밸런스드 케이블이 동봉됐으나 이제는 동일한 밸런스드라도 규격이 다른 4.4mm 케이블이 동봉되고 있습니다.
제작 공정의 변화와 그로 인한 소리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케이블에 따른 소리의 차이가 있는지 등등에 대해서는 2부의 (내 멋대로)탐구에서 다루니 참고해주세요. ㅎㅎ
3. 외관 및 착용감
순서대로 HD 600, HD 700, HD 800
팔스의 전신 흐드팔과, 더해서 HD700(이하 흐드칠)은 출시 당시 엄청나게 미래적인 외관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룩이 기존 600 시리즈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그렇다고 슈퍼 플래그십인 오르페우스와 비슷했냐면 그것도 아니었죠. 젠하이저는, 물론 소리를 위한 구조변경이 큰몫을 했겠지만 두 새로운 상위기에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적용합니다. 그리고 이건 적어도 디자인 측면에서 600 시리즈와 분명한 차별화를 가능케 했어요. 그러나 오리지널 흐드팔의 디자인은 차별화를 달성한 것을 제외하면 절반의 성공으로 남습니다. 우선 은색 외관은 미래적인 느낌에 일조했을지 모르지만 플래그십다운 무게감이 없었고(현재도 각사의 플래그십 헤드폰은 대체로 무게감 있는 색상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 검정색, 카본색, 나무색 등) 칠까짐도 빈번했어요. 역시 소리를 위한 것이었다지만 플라스틱 재질 또한 고급스러움과는 차이가 있었고요. 팔스는 반전을 꾀했습니다. 메인 컬러를 검정색으로 바꿔버렸지요. 그럼으로써 한층 플래그십다운 무게감을 획득했습니다. 여전히 플라스틱인 점, 또 플래그십임에도 불구하고 헤드밴드 상단(시리얼 번호가 새겨진)을 제외하면 젠하이저 로고가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이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는지 젠하이저는 이후 발매한 밀폐형 플래그십인 HD820에 측면 로고를 삽입합니다) 한결 나아졌다고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헤드폰의 디자인은 단지 미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요. 2부에서 팔스의 갖가지 세부구조에 대해 음향학적으로 접근해보기에 앞서, 여기서는 외관상으로 두드러지는 부분 몇몇만 먼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메탈 스크린의 전면 채용
메탈 스크린을 외부 하우징에 전방위로 둘러친 설계는 흐드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팔스 특유의 SF적이고 미래적인 외관에 한몫을 하고 있을뿐더러, 많은 리스너에 의해 아직까지도 제일가는 음향학적 설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리스너에 한한 평가만은 아닐 텐데, 흐드팔 이후로 직계 후손인 팔스에뿐 아니라 여러 타사의 헤드폰,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야마하의 YH-5000SE 등에서 벤치마킹되었기 때문입니다.
2) 거대한 사이즈의 이어컵과 상대적으로 얇은 이어패드
동사의 최신 헤드폰인 HD 490 PRO(이하 490)과 비교해볼 때, 490도 작은 이어컵은 아니건만 팔스의 이어컵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사이즈를 자랑합니다. 이어컵이 넓기에 귀를 둘러싸는 내부공간의 면적도 팔스가 한참 넓은데요. 사진상으로는 크게 넓어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1.5배 이상입니다. 또한 이어패드의 체감 두께도 팔스가 490 대비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3) 전방 지향적(Front-oriented) 구조
팔스는 기본 구조가 이어컵을 전방 중앙을 향해 기울여 놓도록 되어 있는데요. 이는 처음부터 이미 조금 기울어진 채 배치되어 있던 드라이버 유닛을 한층 더 전방 지향적(front-oriented)이게 만듭니다.
젠하는 언젠가부터 이 팔스와 HD 560 S 같은 헤드폰에 이른바 E.A.R(Ergonomic Acoustic Refinement; 인체공학 음향 개선) 기술을 적용했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전방지향적 드라이버 배치라고 보면 되겠고, 그 목적은 보다 자연스러운 사운드 재생에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스피커를 모사하고자 한다면, 스피커란 우리 귀 양옆에 배치된 게 아닌 전방의 어딘가에 배치된 무엇이게 마련이므로, 조금이라도 전방에서 재생되는 것 같은 구조를 취할 필요가 있거든요(팔스의 아버지인 전 젠하 개발자 Axel Grell은 올해 상반기에 이러한 본인의 설계사상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OAE1 같은 헤드폰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팔스는 2009년에 흐드팔이 채택했던 것 그대로이므로 어느덧 15년이 다 된 구조를 하고 있지만,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훌륭한 착용감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모든 부위가 삐걱대거나 하는 일 없이 서로 잘 맞물려 사용자의 머리에 안착하죠. 측압도 낮구요. 다만 제 개인적으로 팔스의 착용감이 좋게만 다가왔냐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한시간 남짓 착용하고 있을 때 정수리가 무지 아팠어요. 측압이 약한 만큼 머리에 '얹힌' 상황이 되어버려, 헤드밴드에 무게가 쏠렸기 때문인데 일종의 트레이드오프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저는 얼굴이 작은 편인데, 얼굴이 작은 분들께는 팔스의 유독 큰 이어컵을 위한 대형 알칸타라 패드의 특정지점이 두상에 충분히 안착하지 않아 이거 착용이 잘 된 건가? 라고 느낄 수 있음 또한 유의하셔야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닿는 부분에 따라 측압이 달리 느껴질 뿐 안착은 된 건데, 이 또한 2부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겠지만 팔스가 거의 전적이다시피 고요한 실내에서 들어야 하는 헤드폰이 된 이유기도 합니다. 요컨대 팔스의 착용감은 출시 시점에 훌륭했고, 여전히 나쁘지 않지만, 이를테면 젠하이저의 최신형 헤드폰인 490 등과 비교할 때는 조금 부족하다고 하겠습니다.
팔스의 정착용 팁을 하나 드리자면, 가급적 귀의 어느 부위도 내부 구조에 닿지 않도록 착용하시길 권합니다. 다행히 내부공간이 워낙 넓으므로 이렇게 착용하기 어렵지는 않은데 이렇게 착용하는 것이 개방감을 끌어올리고, 개방감은 다시 팔스 특유의 '공간감'에 플러스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관련한 다른 여러 지점들은, 다시 한 번, 2부의 탐구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4. 청음기
팔스의 청음은 일차적으로 제게 균형잡힌 헤드폰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은 490(프로듀싱 패드)을 기준(7점)으로 놓고 번갈아가며 들어보는(비교청음) 식으로 진행하였으며 추가로 어느덧 옛날 헤드폰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의 상찬을 받고 있는 포칼의 Clear OG(이하 클리어)와도 비교해보았습니다.
❗️청음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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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업 종사자가 아니거니와 막귀에 심지어 악기에도 무지한지라 할 수 있는 거라곤 여러번 들어본 음원에 대한 간략한 느낌 비교서술 정도입니다. 더 정확한 평가는 영디비의 많은 음악계통 종사자, 이헤폰 제작 및 튜닝 유경험자, 그밖에 청음경력이 긴 고수분들의 청음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라며, 제 청음기는 이렇게 들은 사람도 있다 정도로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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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청음기를 작성할 때 소정의 원칙이 있습니다. TMI지만 적어둡니다. 제 나름 만들고 발전시켜 온 것으로 앞으로도 가능한 아래와 같은 원칙에 유의할 예정입니다.
1) (좀 우스꽝스러우시겠지만)반드시 크게 한 번 하품을 한다. - 하품을 할 때 귀가 뚫리는 경험은 비행기에 탔을 때만 하는 것 같지만 마냥 그렇지 않습니다. 일상생활 도중에도 가끔 하품을 하다 귀가 많이는 아니라도, 조금쯤 막혀 있었고 방금의 하품으로 뚫렸음을 깨달을 때가 있더군요. 이게 청감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해서 각잡고 청음할 때는 반드시 하품을 선제적으로 하고 돌입합니다.
2) 조용한 내 방에서, 주위소음을 가능한 차단한 채 청음한다.
3) 사람은 크게 들을수록 좋다고 느끼게 되어 있으므로 비청하는 두대의 기기의 볼륨을 가능한 일치시킨다.
4) 한대의 기기만 단독으로 들어서는 대역별 밸런스, 소리결, 스테이징 등등을 엄밀히 비교하기 어려우므로 반드시 비교군과 대조군, 두 대의 기기를 번갈아가며 듣는다(즉 제 모든 청음기는 비교청음기가 되겠습니다).
5) 비교청음은 대조군 당 아무리 적어도 10회는 실시한다.
6) 동일 DAC/AMP로 진행한다.
이어질 청음기는 청음과 동시에 작성한 것으로 존댓말이 생략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Die For You - The Weeknd
📌 포인트 : 간주의 정위감(특히 18초경의, 흔히 찾아볼 수 없을 앞뒤 효과음)과 타 음원들에 비해 다소 작은 볼륨의 주변 효과음별 디테일, 해소력 그리고 분위기(장악력).
🔉일반곡 볼륨(Qudelix-T71 기준)
HD 490 PRO(SE) : -17
HD 800 S(BAL) : -18
Clear OG(BAL) : -22.5
HD 490 PRO(Baseline) : 7, 밀도있으면서 균형잡힌 소리. 보다 리니어한 극저음이 돋보이는 것으로 시작하여, 50초 경의 let me tell the truth에서 th 발음이 팔스 대비 한층 정확한 등 한 걸음 가까워진 보컬의 이점을 살려낸다. 팔스가 저음을 상하좌우로 더 넓은 면적에 걸쳐 재생하여 음장감을 형성한다면, 이 녀석은 더 깊은 곳에서 지진파처럼 울려 냄으로써 음장감을 형성한다. 모든 소리의 중심이 놀랄 만치 한 점으로 정확하게 수렴하고 있고, 덕분에 정위감과 소리별 해소력에서 팔스를 앞선다. 분위기 또한 팔스 쪽이 보다 개방된 장소다운 현장감을 살린다면 이쪽은 폐쇄적이나 그만큼 소리가 꽉 찬 장소다운 현장감을 살리므로 막상막하라 하겠고. 그러나 팔스를 듣다 이쪽을 듣든, 이쪽을 듣다 팔스를 듣든 저마다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 이쪽을 듣다가 팔스를 들었을 때의 장점(특히 더 넓은 스테이지에서 음장감을 형성하는)이 더 크게 느껴지므로 최종 점수는 다르게 줄 수밖에.
HD 800 S : 8, 말로 다 못할 여유로움이 팔스에게는 있다. 현장의 넉넉함이 있다. 음악 감상에 빠져들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현장에서 음악을 들을 때 갖은 디테일을 뜯어보며 들을까? 그런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냥 음악에 몸을 맡기게 될 뿐. 팔스에게는 그 비슷한 상태로 청자를 침잠시키는 재주가 있다(물론 그 와중에도 갖가지 디테일을 충분 그 이상으로 살려내고 있지만).
Clear OG : 6.5, 밀도감이 대단하다. 두텁고 흥겨운 소리. 보컬은 물론이고 전대역이 매우 가깝게 들린다. 그렇지만 디테일하게 들린다기보다는 꽉 차게 들린다는 느낌. 490을 들을 때와는 달리 여기저기 심긴 작은 효과음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 또한 이것을 듣다가 팔스를 들으면 넓어진 사운드스테이지의 장점이 무언가를 알 수 있다. 헤드폰이 각각의 소리를 얼마나 잘 분리해내는가와 별개로 사운드스테이지 자체가 좁으면 이것들이 한데 섞여 들린다. 그러나 팔스처럼 넓어진 사운드스테이지라면 각자 정해진 자리가 있는 소리들을 잘 재생해내는 것만으로 분해능이 한결 체감되는 것이다.
2) Fanfares(Alternate Version) - GoGo Penguin
HD 490 PRO(Baseline) : 7, 들을수록 진가를 알게 되는, 놀라운 정확도. 과장도 모자람도 없이 정직한, 분명 막대한 튜닝을 거쳤을 텐데도 어떤 이상적인 풀레인지 드라이버에 아무런 튜닝도 가하지 않았을 때 들릴 것만 같은 소리. 처음에도 좋았던 이 헤드폰에 대한 인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지고만 있다.
HD 800 S : 7.5, 유독 이 곡에 초현실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분명 원음을 그대로 재생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나 전혀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팔스에 대해 음상이 부정확하거나 흐리게 맺힌다는 청음평이 종종 있는데 급격히 커진 사운드스테이지가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각각의 소리 출처를 쫓아가 보면 원래 나던 위치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점진적 확장이 이뤄지는 이 곡에서 490이 평범한 스테이징으로 인해 진작 꽉 차버린 지점에서 팔스는 여전히 여유가 있으며 연주자들이 의도한 수준의 확장 단계들을 차근차근 정확하게 밟은 유일한 헤드폰이었다는 사실이다.
Clear OG : 6.5, 클리어의 소리도 정확하긴 하지만, 490프로에 비한다면 어딘지 나이브하게 느껴진다. 골키퍼 정면으로 향한 슈팅 같달까. 귀와 지극히 가깝게 느껴지는 직접음이 주는 몰입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두 헤드폰을 듣다 들었을 때 음질적으로 낫다는 인상을 주기가 어려운 소리결을 가지고 있다.
3) Dynamite - BTS
HD 490 PRO(Baseline) : 7, 이 곡의 엄청난 저음량 때문이겠지만 에너지가 좀 과하게 느껴진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사람들이 더 저음을 좋아하게 된 요새 나온 팝을 듣기에는 밀폐형에 상응할 만큼 잘 나오는 490의 저음이 마냥 좋지 않을 수 있겠다.
HD 800 S : 7, 나의 경우 헤드폰별로 집중하게 되는 구석이 달라지는데(이게 내 성향 탓인지 헤드폰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음), 팔스에서는 역시 디테일보다 공간 표현에 집중하게 된다. 저음이 딱 알맞게 나오는 와중에 490보다 디테일적인 주목도는 떨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490으로 들을 때는 불거지지 않았던, 이 음원에서 좌상단이 비교적 비어 있고 보컬은 우하단 즈음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렷이 알 수 있다. 또한 음상이 여러모로 겹쳤던 코러스 등의 주변음들이 서로 떨어지는 데서 오는 입체감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이 곡에서는 490과 동률.
Clear OG : 7.5, 보다 Engaging한 점 외에도 좌우 스테이징이 490보다 넓어 전반적으로 호방한 소리를 내 준다. 음악성에서 앞선 데에 보너스 점수.
4) Swan Lake (Suite), Op. 20a, TH 219: 1. Scene - Swan Theme
📌 포인트 : 백조의 호수 하면 다들 떠올릴 정경. 이 곡에서는 볼륨이 정말 중요했다.
🔉이 곡의 볼륨(Qudelix-T71 기준)
HD 490 PRO(SE) : -9
HD 800 S(BAL) : -9.5
Clear OG(BAL) : -15.5
HD 490 PRO(Baseline) : 7, 놀라운 디테일과 공기감. 확보한 스테이지 내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정확성. 이 볼륨은 흥미롭게도 490과 팔스의 차이가 최소화되는 구간이기도 했다. 이 이상 볼륨을 올리면 490은 상대적으로 좁은 스테이지가 미어터지는 소리를 내는 반면 팔스는 한층 웅장하게 들리며 둘 사이의 격차가 커지게 된다. 490의 상대 우위는 후반에 금관악기들이 웅장함을 극대화하는 부분에 있다.
HD 800 S : 8, 팔스 공간감의 진수를 어림할 수 있는 곡. T71 기준 -9.5까지는 볼륨을 올려야 세션이 최대화됐을 때 스테이지 전체를 빈틈없이 꽉 채우는데 이때의 압도감은 단연 전율을 선사하며, 490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다만 이 곡은 팔스가 일정 이하의 볼륨에서는 제 소리를 못 들려준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곡이기도 한데 해당 볼륨 이하에서는 이미 확장되어 있는 전체 스테이지가 충분히 장악되지 못해 군데군데서 이른바 '빈 소리'가 나게 된다.
Clear OG : 7, 클리어는 대단한 헤드폰인 이유가, 또 방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알 수 없는 희한한 음악성이 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상대적으로 저해상도 같으면서도 매력적인 사운드.
👉 평균
HD 490 PRO(Baseline) : 7
HD 800 S : 7.625
Clear OG : 6.875
🔉 비청 후기
클리어는 번외였다 치더라도 팔스와 490이란, 이미 너무 좋은 두 헤드폰을 비교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쪽을 듣든 저쪽을 듣든 저마다의 강점으로 사로잡는 스타일인 데다, 반대편의 단점에 대비되는 장점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90에 비교할 때, 팔스는 음역대별 디테일과 정확도보다는 분위기와 스테이징으로 승부를 거는 헤드폰으로 처음 나왔을 때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해상력 면에서 일취월장한 후배들이 다수 등장한 2024년 시점에서는 마냥 하이파이적 헤드폰이라기보다 취향이 분명한 이들을 위한 마이파이 헤드폰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범용적으로 추천할 만한 제품이라기보다, 이 탁 트인 오픈 에어에서의 자연스러움 그 자체를 장르라고 여길 수 있는 분들께 일차적으로 추천하는 제품이 되겠는데요. 다만 이것이 전부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팔스의, 마찬가지로 사바사겠지만 어떤 취향을 가진 분들께는 더할나위 없이 어필할 또 하나의 장점이 있어요. 이 지점에 대해서는 2부에서 이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2부, <(내 멋대로)탐구 및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
(링크 삽입 예정)
Comment 34
Comment Write워낙 듣는 귀가 좋지 못하다보니 청음기는 예의상 쓴 수준입니다... ^^;; 제나름 열심히 비청했다만 막귀에 더해 전문성도 워낙 부족하다 보니, 청음경력이 오래되신 분들께는 많이 부족해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출시된 것 중에 엘릭스님께는 팔스 이상가는 공간감의 헤드폰이 있으셨나요?
제가 청음했던 헤드폰 내에서는 없었습니다. 800S가 최고였어요.
*추가: 헤드폰의 범주를 벗어난다면 K1000이 제일 넓었었던 것 같습니다. K1000은 아예 스피커처럼 팬텀이미징이 형성되니까요.
없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hd800s의 공간감은 탈헤드폰 급이라 생각합니다.
추신)hd490은 광활함은 800s에 비해 좁은데 정위감이라던지 그런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간감의 넓이와 정확도는 서로 다소 별개인것 같기도 합니다 ㅎ
HD800S 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제겐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자 DD계의 슈퍼 플래그십 헤드폰입니다. 다음글을 기대합니다. 진심으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옛날보다는 많이 올라왔지만 여전히 젠하만한 회사의 플래그십이 받기에는 다소 모자란 평가인 팔스인데, 뭐 타인이야 뭐라 하든 제귀에 좋고 제가 맘에 들면 그만이긴 합니다. ^^ 2부도 최대한 빨리 써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800s 청음을 언제 제대로 각잡고 꼭 들어보고 싶네요 ㅠㅠ
벼르고 계시던 hd800s 리뷰를 드디어 올리시는군요 ㅎ
올해 아마도 hd490이 출시하지 않았다면,
저는 hd800s 중고로 갔을 것 같습니다 ㅎ
애초에 490이랑 800s랑은 체급이 다르죠.
그리고 지향하는 목표도 분명히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상황에서는...
극저음+"헤드폰다움"을 보여주는 hd490이 더 맘에 들더라고요
hd800s는 지나친 광활함+6킬로 피크(이게 때로는 산만하다고 느껴졌음)
때문에 저의 상황에는 좀 맞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저는 개인 작업실이 있어서
그냥 스피커 들으면 되는 상황이라
hd490의 장점(정확함+극저음+선형성 등)이
더 큰 매력으로 느껴졌거든요 :) 게다가 가격도 더 저렴하고요 ㅎ
다음 올리실 글도 기대됩니다!
화이팅!
덧)800s는 밸런스드로 구동하시고 490은 언밸로 구동하시면 반칙입니다!
삐빅! ㅋㅋㅋ
말씀하신 반칙은... 팔스나 490이나 기본 포함 케이블로 비청한 것이라 반칙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마도 ㅋㅋㅋㅋ
세월이 지날 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제품이 있어요.
그 기간을 못 기다리고 회사가 도산하거나 빠르게 단종되면 전설의 명기가 되는 것이고, 유지가 된다면 차세대를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문제는 시장에서 평가할 때 전자가 후자보다 10배 정도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현재진행형의 유일한 단점인 것 같아요.
HD800이 완성형인가에 대한 물음은 HD800s에서 답이 되었듯이, 먼 미래에는 HD800s에 대한 답이 어떻게 도출될지 기대가 되는 헤드폰입니다.
그럼에도 이러나 저러나 명기는 영원한 법입니다. HP-1이 그걸 증명했듯이요.
잘 읽었습니다.
사실 선라이즈님을 포함한 영디비의 고수분들께는 별 재미를 못드릴 1부입니다. 조금은 더 흥미로우시리라 생각되는 2부를 어서 써야 하는데... 다음주쯤 올릴 수 있게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마 제가 들일 사실상 종결기는 팔스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상상하게 됩니다. 흐흫..
분석도 멋지고, 제가 음감 등에 검색같은걸 안해보던 시기의 여론이라니, 이 얼마나 귀한 정보인지..
지금 평이 갈리는 기기들도 시간이 흐르면 명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흥미롭습니당.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
없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hd800s의 공간감은 탈헤드폰 급이라 생각합니다.
추신)hd490은 광활함은 800s에 비해 좁은데 정위감이라던지 그런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간감의 넓이와 정확도는 서로 다소 별개인것 같기도 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