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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기 Sennheiser IE800, 임플란트는 젠하이저에서

Xenon. Xe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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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 드라이버 이어폰이 등장한 이래 DD 이어폰 시장은 급격하게 축소되어 갔다. 특히 UE의 'Triple Fi 10', Westone Labs의 'Westone 3' 등 트리플 BA 이어폰의 국내 정발 이후 소위 '듀만콘댐' 마케팅이 유행하며 하이엔드 시장에서 다이나믹 이어폰은 찾아보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이야 AKG 'K3003' 이후 하이브리드 이어폰이 잇따라 출시되며 고가의 DD 이어폰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DD 제품군만 취급하는 하이엔드 이어폰 제조사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오늘 소개할 IE800은 그런 흐름 속에서도 꿋꿋이 다이나믹 제품군만을 고집해 온 젠하이저의 구형 플래그쉽 이어폰이다. 출시 당시 정발가 100만 원이 넘는 고가였음에도 큰 인기를 구가하며 하이엔드 시장에서도 DD 이어폰이 충분히 통함을 확인시켜 준 제품이다. 사실 BA가 DD에 비해 음질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다. BA 하나로는 대역폭이 좁은 편이라 이걸 극복하자고 다중듀서를 써서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를 짜는 것일 뿐, 오히려 위상, 임피던스 특성이 나빠지기 때문에 범용적으로 쓰기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간혹 인이어를 집에서 들을 때 거치형 앰프와 매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거치형 앰프의 경우 출력임피던스가 높게 설계된 제품이 더러 있기 때문에 BA 유닛 제품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뭐, 이런 특이 케이스는 제하더라도, 모비프렌의 '세이렌 뮤즈'와 같은 블루투스 모듈 역시 자체적인 출력임피던스 값을 갖기에 매칭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는 난점이 있다. 결국 다중 BA의 음질적 이득이란 마케팅이 만들어낸 허구에 가깝다는 것.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젠하이저의 DD 고집은 자사의 제품에 그만큼 자신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는 그 자신감의 근거를 직접 확인해 볼 시간이다.

 

 

 IE800은 특유의 하우징 디자인 덕분에 '임플란트'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구조는 세라믹으로 이루어진 하우징 뒷쪽에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어쿠스틱 댐핑과 벤트를 배치해 내부의 공기 흐름을 정교하게 제어함으로써 저음 재생을 강화하고 모든 대역의 해상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직경 7mm의 다이나믹 드라이버 'XWB 트랜스듀서'를 탑재하였으며 바디 내부에 두 개의 레조네이터를 둔 챔버 시스템을 배치하고, 메탈 거즈를 장착한 '앱소버'라 불리는 부품을 조합시킴으로써 이어 커널에서의 공진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독자 기술 'D2CA(Damped 2  Chamber Absorber)'가 적용되었다. 이를 통해 플랫한 음향 특성과 깨끗한 사운드를 실현하였다고 한다. 드라이버의 직경만큼이나 이어폰 유닛 자체의 크기도 작은 편이라 노즐이 길게 설계된 이어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삽입 깊이가 확보된다. 고역대 강조가 있는 제품인 만큼 삽입 깊이가 소리에 미치는 영향이 큰 편인지라 이런 디자인과 크기는 설계가 참 잘 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죽순처럼 생긴 케이블은 옛 소니, 오디오테크니카 오픈형 이어폰의 그것마냥 길이가 매우 짧은 편이라 여기에 길이별 연장선을 써서 활용하게끔 되어 있는데, 딱히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뭣하러 이렇게 했나' 생각이나 안 들면 다행인 듯.

 

 

Specifications

 이번에도 자사에서 제공하는 그대로 가져왔다.

 

 

 청자를 압도하는 저역의 스케일

 따스한 중역과 대비되는 날카로운 고역

 

 IE800의 저역은 특별하다. 양감이 많고 선이 두터우며 결이 약간 풀어진 느낌이라 조금 무르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재생된다. 낮은 대역까지 내려가는 깊이감, 무게감 표현이 일품. 특히 저역의 스케일이 다른 저음형 이어폰에 비해서도 큰 편인데, 이것은 D2CA 기술에 기인한 특유의 저역대 양감과 자연스러운 잔향, 그리고 3kHz 대역 롤오프의 합작품으로 추정된다. 헤드룸 전체를 저역이 충만히 감싸안는 이 느낌은 이어폰으로서는 경험하기 쉽지 않은 경지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헤드폰급 공간감’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뭐... 당연히 말이 그런 거지 결국엔 판형이 깡패라는 게 필자의 생각. 이어폰은 이어폰일 뿐이다. 여하튼 이러한 저역 특성 덕분에 개인적으론 힙합, 일렉트로니카 등 베이스 비트가 두드러지는 장르와 매칭이 좋다고 느꼈다. 그러나 주다스 프리스트 등 메탈 밴드의 더블 베이스 속주를 듣기에는 조금 느슨한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드럼이 좀 더 타이트하게 조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본기의 중역은 의외로 뛰어나다. 특히 배음의 표현이 좋아 소리가 두께 있고 따스한 느낌이 든다. 필자는 중역대 테스트용 레퍼런스로 아이유 3집 수록곡 '을의 연애'를 즐겨듣는다. 이 곡은 아이유 특유의 보컬과 흥겨운 어쿠스틱 기타의 충실한 재현을 요구하는 트랙이다. 중역대 표현력이 떨어지는 기기로 이 곡을 들으면 보컬이 무미건조하게 재생된다든가 기타에서 뻣뻣한 철사 긁는 소리가 나는 등 영 들을 맛이 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본기를 통해 이 곡을 들어보면 어쿠스틱 기타를 뚱기는 소리에서 탄력이 물씬 느껴진다. 훌륭한 두께감과 마이크로 다이나믹이다. 보컬 역시 정위가 밀려있다거나 표현이 단조롭다거나 하는 등의 부족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고역과의 이음새랄 수 있는 3kHz 부근의 롤오프로 인한 아쉬움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고역에 있었는데, 바로 치찰음 대역이 적잖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 따스한 보컬과 귀를 에는 치찰음의 불협화음이란! 이게 단순히 시옷, 치읓 등의 발음에서만 발생하는 거라면 이런 식으로 언급도 않았을 것이다. 본기의 보컬은 비단 저 발음 뿐 아니라 '호흡이 섞인 발성' 전반에 걸쳐 날이 선 느낌으로 재생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 필자가 즐겨듣는 중 흉성과 두성의 대비가 가장 큰 가수 중 하나가 김경호인데, 당장 김경호의 음반 아무 거나 하나 걸어보면 대강 D5  음 정도의 두성 표현에서는 이런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나 그보다 낮은 대역의 흉성 표현에서는 면도날마냥 날이 선 느낌으로 재현이 됨을 쉬이 알 수 있다. 이게 보컬을 분석하며 듣는 사람에게는 이득일지도 모르겠으나 문자 그대로 감상을 하는 측면에서는 달갑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쩌면 이러한 자극감은 메탈 장르의 재생에 있어서는 오디오적 쾌감을 줄 수 있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였듯 베이스 드럼이 무른 느낌인 데다, 본기의 탐, 스네어 역시 음압감과 예리함이 크게 부족하고, 크래시, 하이햇 심벌의 두께가 엷은 편이다. 다른 악기 표현이 암만 좋아도 드럼의 표현이 이래서야 락, 메탈을 듣는 맛이 나지를 않는다. 그래도 이외의 장르를 듣기엔 현악, 관악의 표현부터 전자음 표현까지 납득이 가는 소리를 들려준다. 치찰음이 강한 제품은 울트라손처럼 현악기의 표현 역시 날카롭게 재현하기 쉬운데 본기의 현악에서는 그런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전반적으로 밝고 맑은 느낌의 고역이며 대역폭도 충분한 수준으로 나와준다.

 

 전반적인 소리 경향성은 직전에 소개한 'MDR-EX1000'과도 흡사하다. 매력적인 저역, 3kHz 롤오프, 날카로운 치찰음까지. 그러나 저, 고역에 걸친 광대역감이나 저역의 스케일, 전반적인 두께감과 매크로 다이나믹 면에서는 IE800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100만 원이 넘는 가격표를 달고 나왔던 플래그쉽 제품다운 성능과 매력을 보여준다.

 밸런스드 아마쳐 드라이버만 무수히 때려박은 수 백만 원대 초고가 이어폰이 시장에 넘쳐나는 지금, 젠하이저의 7mm짜리 다이나믹 드라이버가 들려주는 설득력 있는 소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당신이 지금의 BA 이어폰의 소리에 뭔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면, 이 제품을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드라이버 갯수만 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 특이하게 생긴 1DD짜리 이어폰이야말로 당신의 앓던 이를 대신할 훌륭한 임플란트일지도 모른다. 
  
 https://cafe.naver.com/hppp/103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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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u4525 minu4525님 포함 3명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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