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mm 평판형 드라이버의 Monolith M1070을 듣고

화요일에 봄 청소용품을 구하려고 아마존을 둘러보다가 Monolith사의 미들급 평판형 헤드폰인 M1070이 $239 달러에 세일하는 것을 보고 그만 질러버렸습니다. 알리에서 시킨것들이 아직 중국 세관 통과도 안 했는데 손이 통장을 배신하는 군요. 애초에 저 회사는 전에 iSine10과 비슷한 M350이라는 평판형 이어폰 모델을 구해서 써봤다가 실망했던 적이 있어서 굳이 다시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이미 주문 완료 메시지만이... 
  
변명을 하자면 106mm라는 무식한 크기의 드라이버는 어떨까, 라는 것을 저렴한 가격에 느껴보고 싶기도 했고 정 소리가 마음에 안들면 리스톡 비용만 내고 리펀드가 가능하니까 일단 주문 취소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합리화했습니다. 
  
 그러던 오늘 와중 격렬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부쉬에서 다리우스에게 실명 먹이는 티모마냥 고개만 빼꼼 내밀고 문 밖을 확인하니 뭔가 굉장히 큰 박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하고 뜯어보자... 
  

??? 뭐야 이게 ???

 그렇습니다. 106mm드라이버라는 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고 당연히 그 케이스도 괴물같은 크기입니다. ifi HIP DAC과 크기를 비교하자면,

이렇게 되네요. 더 큰녀석들도 있겠고 100mm가 넘는 드라이버이니 큰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X2HR도 50mm 드라이버를 처음 써봐서 꽤 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건 그냥 크기부터 말이 잘 안나오는 크기입니다.  
  
 일단 업무를 마치고, 청음을 위해 이 녀석을 착용했습니다. 580g이라는 무게가 일단 절대 작은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580g이면 거진 고기 한근 입니다. 4인 가족이 식당에 가서 삼겹살을 인당 1인분씩 시켜도 주인이 양심이 부족하면 좀 모자랄 정도의 무게입니다. 몇킬로가 넘는 장바구니를 머리에 이시고 제 고사리 같은 어린 손을 잡고 장을 봐오시던 할머니가 생각이 나는 무게입니다. 할머니 당신은 대체 어떤 싸움을... 
  
 소리를 들어보면 일단 놀랍게도 저 거대한 외형과는 다르게 사운드 스테이지가 생각보다 좁습니다. 물론 HD58X와 비교하자면 넓은 편입니다. 비유하자면 HD58X는 내가 마이크가 되어있고 모든 소리가 나에게 녹음되기 위해 다가오는 느낌이라면 이쪽은 27인치 컴퓨터 모니터를 세로로 세운 정도 영역내에서 소리가 주로 울립니다. 기본적으로 전체적인 소리에 밀도가 높고 좁다는 느낌이 확 듭니다. 
 
 저음 표현력과 질감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펀치도 좋고 풍부하다는 말이 어울립니다. 다른 평판형인 HE5XX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해상도를 보여줍니다. 

 미드는 호불호의 영역인거 같습니다. M1070이 미드를 강조하는 헤드폰이긴 한데 그런 와중에 보컬이 반발짝 뒤로 빠진 소리를 냅니다. V60 직결을 했을때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이고 Fiio Q3나 ifi HIP DAC을 사용했을때는 좀 덜 했습니다.
 고음은 깔끔하지만 너무 밝지는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저음에 비해서는 전혀 강점이 아니라는 것. 또 정확히 어느 음역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10Khz?) 피크가 있는지 고음이 많은 곡을 주욱 들으면 좀 피로한 느낌이 있습니다. 또 보컬이 조금 빠지는 느낌과 고음역에 대한 특이한 강조가 합쳐져서 보컬 위주의 곡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MAKTUB - Aurora나 숲의 목소리 같은 곡은 화음보다 악기 소리가 강조되어서 별로더군요.
  
 전체적으로 보자면 굉장히 저음 표현력과 디테일이 마음에 들고, 오래 듣기에도 편안합니다. 소리의 중점은 미드에 있는거 같습니다. 빌드 퀄리티도 HIFIMAN의 거치대에서 꺼내 들다가 부서질것 같은 저가형 모델들에 비해서 훨씬 더 좋네요. 남자 보컬 위주의 곡을 들으면 특출 난것이 없고 약간 먼 느낌이 나지만, 미드 전체에 소리가 풍부한 곡들은 앉은 자리에서 서너시간씩 음감하기에도 좋아서 노동요 플레이어로도 훌륭한 것 같습니다. Oasis나 Bon Jovi의 곡들을 들을때는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장르를 좀 타겠지만 전체적으로 HD58X보다 나은 헤드폰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것 같습니다. 세일가 $239라면 비슷한 가격대의 HE5XX보다 확실히 더 나은 선택인거 같고요.
  
 문제는 고기 한근 머리에 지고 일하게 되는 이 무게... 말이 580g이지 목과 등을 기대서 의지하는 게이밍 체어가 아니라 그냥 딱 허리 대고 일하는 오피스 체어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이거 부담이 꽤 됩니다. 상체 근육은 전체적으로 꽤 단련이 되어있는데도 목과 어깨가 꽤나 불편하네요. 리클라이너에 기대어서 들으면 딱 좋습니다. 추가로 세일해서 $239이면 가성비가 좋은 헤드폰이지만 원가인 $349라면 HIFIMAN의 Sundara라는 빼어난 경쟁자가 있어서 마냥 추천하기 쉽지 않겠네요. 
  
 승모근 단련과 훌륭한 저음역 감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Monolith M1070에 대한 짧은 감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