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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 Maiden - Remember Tomorrow - 1980

뮤직마니아
113 3 8

79년 가을에 열린 명지대 아랑제 참가 후 부마 시위에 참가하고 박통 살해 사건으로 학교는 폐교하고 80년 봄에 서울의 봄이라는 긴장된 열망으로 학교에 갔지요. 학회장 선거를 직접선거로 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부는 순간 시위 도중 체포되었고(나만 원래 선빵, 선봉 이런 거 아주 좋아하거든요), 학생들의 교외 시위 덕으로 풀려나와 집에서 쉬고 있는데 5월 초에 경찰차가 집까지 와서 불법 체포되어 보안대에서 좋나게 1주일 동안 고생하던 중 갑자기 5월 17일에 경찰 유치장으로 이송되어 거기서 518을 맞았습니다. 즉 이들은 미리 모든 준비를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주일 뒤 대학살이 끝나고 유치장 동료들은 모두 창원 39사단으로 이동되어 1주일 좋나 유격훈련만 받다가 풀려났습니다. 며칠 뒤에 저는 사회면에서 일면식도 없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연루자가 되어 무기정학을 받았지요.

83년에 무기정학이 해제되고 경영학과에서 사회학과로 복학하여 졸업했지요. 완전한 사면은 88올림픽 전에 받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대학원을 마치고 유학 준비를 했고 강사 생활 2년하고 프랑스로 온 거지요. 그래서 지금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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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어머니가 앨범을 많이 사주셨어요. 

이것도 그중에 하나인데 방콕하면서 엄청나게 책을 읽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2년 이상 동안 읽은 책이 현재의 나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래 앨범 사진이 당시의 내 모습이라 봐도 될 것 같아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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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아빠 재인아빠님 포함 3명이 추천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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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고생 많이 하셨군요.

온 몸으로 이 땅의 격변기를 사셨네요.

박정희가 수하의 권총에 죽은 1979년,12.12 쿠데타를 일으켰던 당시 1사단 사단장이었던 소장 전두환을 위시한 하나회 중심의 군부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인사들과 학생들을 위법적이고 폭압적으로 고문하고, 위해하여 민주화 운동 열기를 압살했지요. 그렇게 서울의 봄은 다시 거꾸로 혹한의 시련을 겪어야 했구요. 당시 서울 등 타지역에 비해 아직 민주화 요구의 열기가 꺾이지 않았던 광주 지역의 학살을 계획하여 그 지역을 봉쇄하고 미친 특전사 군인들을 풀어 자국민을 학살했지요. 정말 정치적 판단을 떠나 인간적인 보편적 가치관으로 앞으로도 절대 용서하면 안되는 자들입니다.

요즘 5.18을 북한의 배후조종에 의한 소행이라 떠드는 자들이 꿈틀꿈틀 기어나오는데 저런 자들 또한 절대 받아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정치적 의도로 진실을 호도하는 자들이지요.


자식의 정신적 고난을 어머님께서 음악으로 버티게 해주셨던 것이군요. 어머님이 존경스럽습니다.

그 시대의 고난을 겪어내신 뮤직매니아님께도 감사와 존경의 인사드립니다.


04:01
23.05.18.
굳지
아마 굳지 님도 그 시간 그 공간에 있었으면 그렇게 행동했을 겁니다.
정도의 차이 혹은 운빨 ㅎㅎㅎ
순간 힘들었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04:14
23.05.18.
profile image
뮤직마니아
80년 5.18 당시 저는 국민학생이었습니다.
뉴스에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어쩌구 나오는데 왜 그리 무섭던지...
어머니 등 뒤에 숨어서 뉴스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께 저기는 왜 저러는 거냐고 물었더니 "나쁜 사람들이 저러는 거"라고 하셨더랬지요.
당시 다른 지역의 국민들의 눈과 귀를 철저히 통제했기에 진실을 몰랐으니 당연한 반응이셨을 겁니다.
나중에 광주의 진실을 알고 얼마나 분노가 일던지..
그래도 뮤직매니아님처럼 선봉에 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
04:24
23.05.18.
굳지

저는 게릴라전에 능한 전통이 다 시나리오를 만들어 광주로 몰아넣어 만든 학살극이라 봅니다.

당시 진압대에 있었던 학교 선배(당시 해병 소위)와 나중에 (오랜 후에 만나) 들은 바로는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나만해도 시간에 맞춰 체포되었고(동조 못하게) 그만큼만 고문당하고(일이 계획대로 해결되었으니) 풀려났으니까요. 이건 전통이 감독 연출한 작품입니다.

이상한 이야기 하나 해드리지요. 전통이 대통령에서 물러나는 날 그가 내 꿈에 나타났습니다. 그가 그러더군요. "후나 나 대통령한다고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했다. 시내 구경 시켜주라"하더군요. 그런데 내가 용서하고 시내에 데려나갔는데 그를 본 사람들이 막 돌을 던지더군요. 그리곤 잠에서 깼습니다. 정말 개꿈이지요. 이런 이야기 정말 오랜만에 합니다.^^^

05:01
23.05.18.
profile image
뮤직마니아
전머갈이 군인으로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군복무를 1사단에서 했습니다. 거기 철책 가까이 가면 그 자가 사단장으로 있을 때 세운 전두환 장벽이 있습니다. 서부전선이 비교적 평야지대여서 탱크로 밀고 들어오기 좋은 지역이니까 거기에 방어하기 위한 두꺼운 콘크리트 방어벽을 길게 설치해 놨더군요.
그러니 두목 노릇을 할 수 있었겠죠.

꿈에서 일석이조를 이루셨네요.
용서로 도덕적 우위에 서시고,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징벌도 하시고..^^;;;

뮤직매니아님의 개인적 용서와는 별개로, 저는 그 자가 백담사로 귀양을 갔다왔어도 역사에서는 절대 용서해서는 안되는 반인륜 범죄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시형시켰어야지요.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지금도 화가 나네요.
05:17
23.05.18.
profile image
뮤직마니아
진짜 화가 나는 게 이런 겁니다. 이 개*식은 전국민을 상대로 전 국가적인 군사작전을 펼쳤어요. 후방의 동조세력을 검거해서 미리 제압하고 폭동이라 언론을 통제해 선전전을 펼치면서 나머지 국민들의 동요를 막고, 작전지역을 봉쇄해서 쥐새끼 한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얘기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한 후 군대를 투입해서 민간인들을 마음대로 도륙한 겁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말이죠.
그 뒤로 자신의 죗값을 덮으려니 고문과 탄압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 밖에 없었죠.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청문회에서 지껄이던 개*식. 사형으로 답을 해줬어야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더러운 인간이 나오지 않게 말이죠.
05:40
23.05.18.
profile image 2등

아이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뮤직매니아님 같은 분들의 노력과 희생이 우리 나라를 이만큼 나아가게 했다고 믿습니다. 

11:09
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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