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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 프로] 완전무선, 이제는 납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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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153.jpeg


 
0) 도입 

마침 장거리 비행기 탈 일이 있었던 차에, 비행기에서 노캔 함 써보고 싶은 로망이 있어서 급하게 구했습니다.  
워낙 인기가 좋아서 두어번의 헛걸음 후 탑승 당일 공항 가는 길에 겨우겨우 입수할 수 있었네요.  
그런데 경유 공항 면세점에서 벌써 안정적인 재고를 확보하고 팔고 있어서 허탈...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렸더니 인터넷이 너무 답답해서 열흘이 넘게 지나도록 후기를 못 올렸습니다.

출시 직후에 애플스토어에서 잠깐 청음해보고 영디비에 긍정적인 인상을 적었었는데,  
과연 제대로 들어보면 어떨지 두근두근 했습니다.  
   
 
1) 노이즈캔슬링 & 외부수음
  
우선 보잉 777-300 날개부근 창가쪽 자리의 소음 환경을 측정해보았습니다. 
당연히 이륙 및 상승시는 더 시끄럽지만, 안정적인 고도에 올라온 이후 순항중의 소음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

IMG_0179.jpeg

  
dB-A 웨이팅 기준 72dBSPL을 찍는 유사 핑크노이즈 패턴입니다. (대략 -8dB/oct) 
아시다시피 그냥 시끄럽다고 보시면 됩니다. 음악 듣기 좋은 환경은 절대 아니지요.
 
첫 페어링 후 귀에 꽂는 것만으로도 "딩"하는 신호음과 함께 주변이 조용해집니다.
특히 차음성 좋은 커널형 이어폰들도 잘 막아주지 못하는 저역대 소음이 많이 줄어듭니다. 
클래식 음악의 조용한 부분을 재생할 때에는 노캔을 뚫고 들어오는 고역대의 날카로운 소음이 거슬리긴 합니다만,  
"노캔이 작동 안 하고 있나...?"라고 생각해서 노캔 기능을 해제하면 우렁찬 소음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10시간 비행 중 한 두 번이 아닌 여러 번 있었던 일입니다. 
사실은 패시브 차음만으로는 음악 감상이 전혀 불가능했을 상황이었지만, 
위화감 없이 노캔이 작동하면서 귀가 조용함에 적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먹먹함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을텐데, 저는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비행기에서는 "끔"과 "노이즈 수용" 모드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소음이 다르게 들리긴 하는데, 기본 패시브 차음성이 거의 없다보니 그냥 똑같이 시끄럽고  
음악을 재생하지 않을 때 기준으로 대화 상대방의 목소리는  
"노이즈 감쇠", "노이즈 수용", "끔" 세 모드에서 비슷하게 잘 들렸습니다.
중-고음역대와 돌발 소음에 대한 차음능력은 특출난 점이 없기도 하고요,
알고보니 어차피 비행기 소음이 너무 커서 상대방이 약간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노캔 사용 중에는 내가 작은 소리로 말하게 되어서 상대방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게 문제였습니다. 
스튜어디스가 뭐 먹을지 물어보는거 잘 들려서 대답하는데, 그게 입만 뻐끔뻐끔 하는 것처럼 보이곤 했지요...  
  
결론적으로 시끄러운 환경에서의 노이즈캔슬링 성능은 완벽까지는 아니어도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에어팟 프로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QC35ii(와이프꺼)와 비교할 생각을 못했던게 실수입니다. 
...좀 바꿔 써볼 걸... 여보 미안...  
  
비행기 같은 환경이 아닌 일상의 생활환경에서는 "노이즈 수용" 모드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마치 귀에 아무 것도 안 걸친것과 90% 이상 똑같이 들립니다.  
착용을 변경하지 않고 "노이즈 수용" 모드와 "노이즈 감쇠" 모드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데,  
그 변화가 극적이어서 노캔 성능이 더 좋게 느껴집니다. 
대화를 위해서 상대방이 목소리를 키우거나 내가 이어폰을 빼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노캔의 목소리 대역 감쇠 성능도 그럭저럭 쓸만합니다. 아주 안 들리면 좀 곤란한 대역이기도 하고요.  

 
2) 소리 품질 
 
첫 청음후 남겼던 평을 반복해도 될 것 같습니다.  
들려야할 소리들이 모두 정확한 음색으로 잘 들리는, 깨끗하고 균형잡힌 소리입니다.  
심심한 소리라고 평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소리가 재미 있으면 안 되고 음악이 재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노캔 제품의 토널 밸런스에 대해서는 별로 긴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우징, 드라이버, 팁(패드) 등 물리적인 음향(어쿠스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엉망이라고 하더라도, 
노캔부 전자 회로에서 EQ를 먹여서 강제로 다림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렇게 하면 밸런스만 겨우 맞는 아주 후진 음질이 됩니다. 

에어팟 프로의 경우 기본적인 어쿠스틱 튜닝이 잘 되어 있는 제품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소위 어댑티브 EQ라는 기능의 정체가 명확하지 않고 끌 수도 없게 되어 있어서 찝찝함이 있습니다만,  
기초부터 엉망인 밸런스를 강제로 다림질하는 기능은 아닐거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작은 DD 유닛에서 이정도의 해상력과 깔끔함이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널밸런스에 대해서 첨언을 하자면,  
노캔을 뚫고 들어오는 고음역대의 소음을 충분히 덮어버릴 수 있을 만큼 볼륨을 키우면  
약간 "honky"하고 저렴한 느낌의 깽깽이 소리가 됩니다.  
600Hz 언저리의 중음이 넓게 도드라진 것과 연관이 있는 듯 합니다.  
아이폰 기본 EQ 세팅 중 하나인 트레블 부스트를 적용하면 깽깽이 음색이 사라집니다만... 
이 소리는 배경 소음이 약간이라도 잔존하는 환경에서의 음악감상에 적합한 밸런스는 아닌 것 같습니다.  
노캔이 아무리 좋아도 그정도는 아니거든요.
하만 기준이건 DF기준이건 간에, 휴대용 이어폰에서는 플랫보다는 살짝 warm-tilt 성향을 선호합니다.  
틸트의 기울기가 얼마나 되어야 하느냐는 사용자의 선호뿐만 아니라 주 사용환경에 종속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애플이 대중적으로 먹힐만한 sweet spot을 잘 잡았다고 봅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조용한 호텔 객실에서 감상할 때는...?  
... 의외로 더 좋았습니다. 밸런스가 완-벽합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제게는 노캔 작동시의 위화감이 없었기 때문에  
조용한 호텔 객실에서도 노캔을 안 킬 이유가 없었습니다.  
원래 조용한데, 노캔을 키면 더 조용합니다.  
자체 노이즈가 완전히 없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감쇠" 모드에서 청감SNR의 손해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음질 얘기를 하면서도 노캔 성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노캔 기능이 음질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우수하고 자연스러운 노캔 성능 덕분에 음악 속의 세밀한 정보들이 더 잘 들립니다. 
해상력에서 조금의 아쉬움도 없습니다.  
디테일을 강조해서 귀로 쏙쏙 들어오게 쏴주는 성향이 아니라,  
차분히 감상하면서 디테일들을 차근차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성향으로 튜닝되었습니다. 
다만 이런 장점은 아무리 노캔 성능이 강력하다고 해도 소음이 존재하는 야외환경에서는 와닿지 않을 것 같습니다.   
 
 
3) 착용 
  
iOS의 검사 기능으로 살펴본 바, 제 귀에는 SML 세 팁 모두 쉽게 안정적인 밀폐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가장 작은 S를 선택하더라도 몸체가 제게는 너무 큽니다. 
다른 커널형 이어폰에 비해서 특별히 큰 편은 아니지만  
팁 부분이 이도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라서 몸체 뒤와 윗 부분이 물렁뼈를 지긋이 누릅니다. 
오래 착용하면 아픕니다. 장거리 비행기에서 노캔에 의지해 잠들기 어려울 정도로 아픕니다.
외부 수음 모드가 워낙 좋아서 그냥 하루 종일 착용한 상태로도 일상생활 하는데 무리가 없는 제품인데, 
착용감과 배터리 문제 때문에 아쉽습니다. 
  
유닛과 팁 부분은 좀 더 이도 안쪽으로 깊숙히 착용하고 
배터리나 기타 전자파트는 귀 바깥에 나와있게끔 설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적고 보니 이게 바로 소니 방식이네요. 
1000xm3를 써보지 못해 과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배부른 불만일지도... 
  
그리고 저는 실리콘 팁이 싫습니다. 
낄때 구겨지는 듯하게 들어가고 뺄 때 뒤집어지면서 나오는게 싫습니다.. 
어서 빨리 폼팁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4) 결론과 후기
  
무선 이어폰이라는 물건은 어떻게 보더라도 완벽한 음향 성능을 지향하는 제품은 아닙니다. 
특히나 애플같은 대기업이 대중시장을 공략하려면 음질을 포기하는 타협들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의 결과가 이정도의 음질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입니다. 
고수의 타협이 일반인의 완벽주의보다 더 나은 결과를 제공하는건 생각보다 흔한 일인가 봅니다.

에어팟 프로에 대한 다른 분들의 평가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기존 이어팟과 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어팟은 저의 기준으로는 이것으로는 음악을 못 듣겠다고 생각되는 제품이었습니다. 
실내에서는 저역 과다 때문에 디테일이 하나도 안 들리고, 실외에서는 소음 때문에 하나도 안 들립니다.
짭이 아니고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 구매하고 따라온 번들인데도 그렇습니다. 
제게는 사실상 쓸모없는 물건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오픈형 이어폰의 숙명이나 마찬가지고, 
이어팟은 아주 잘 만든 오픈형 이어폰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저 오픈형 이어폰이라는 카테고리가 멸종할 때임을 실감할 뿐이지요. 
 
이런 제품군이 애플 때문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연명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전체 시장의 평균적인 음질 수준의 향상이 지체되고  
소비자 대중의 귀 건강에도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LG와 삼성에서 잘 만든 커널형 이어폰을 번들로 제공하고 있는 반면, 
애플은 고성능 이어폰을 연결할 수 있는 단자부터 제일 먼저 빼 버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은 무선 이어폰은 여전히 무쓸모의 오픈형을 고집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이팟으로 부활했던 애플이 이제는 자기 정체성에서 음악을 완전히 지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에 대한 뒤늦은 대답이 에어팟 프로입니다. 
 
대답 내용에는 만족하지만,  
이렇게까지 늦을거라면 아이폰7에서 부터 3,5mm 단자를 뺐던 것은 확실히 시기상조가 맞긴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정도라면 휴대용으로는 선이 없어도 되겠다."  
이제 와서야 겨우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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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싸님 포함 8명이 추천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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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최고네요.
17:23
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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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잘 보았습니다. 집에서 음악만을 듣는 사람은 요즘 드물죠. 대부분 출퇴근의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에서 듣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기가 이해됩니다.
18:00
19.11.17.
이어팟이 잘만맞으면 아주 부담없이 편안한 소리인데 ㅠ
애플에서추구하는게 그런거같아요 말씀데로
대중적으로 문안한
18:19
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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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중적으로 문안한 소리도 아니었음에도  
 대중적으로 문안하다는 소리로 만든것 같아요  
  
 이어팟이 처음나왔을떄는 다들 소리가 심심하다고 했는데  
 점점 다들 그 성향에 잘 맞춰 지는것 같아요 
 

00:09
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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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3.5잭 없애고 제대로 된 음악 들으려면 가성비 떨어지는 블루투스 쓰라는 부분에서는 마음에 걸리네요
11:11
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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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탈리스트
그쵸.. 그 가격대에 좋은 이어폰 많은데.. 거꾸로 이어폰은 거의 번들만쓰던사람이 에어팟 프로사면 좋다 생각할겁니다. 애플이 마케팅하나는 잘합니다.
17:51
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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