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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공룡이 세상을 지배했을 때

ilvin i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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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글을 하나 올렸지만, 최근 건스 앤 로지즈의 신규 싱글을 들으면서 

그 시절 음악에 얽힌 추억들이 떠올라 간단하게 주절거려 봅니다.


건스 앤 로지즈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는 

제가 본격적으로 음반들을 사 모으며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공룡'들의 시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거대했다는 의미에서 공룡이 아니라, 나름대로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이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명맥이 끊어져 지금은 모두 멸종해 버렸거나, 

아직 존재한다해도 서식지와 형태를 바꿔가며 근근히 연명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렇고, 

거친 그들의 태도와 행동이 그렇고, 대작, 대곡 중심의 덩치로 승부하던 그들의 음악이 그러했습니다.

 

그 당시, 특히 제가 살던 동네를 주름잡던 음악은 헤비메탈이었죠.

데뷔앨범부터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Master of peppets을 통해 명실상부 지존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 Metallica를 필두, 

Megadeth, Anthrax, Overkill, Slayer, Testament, Nuclear Assault, Sanctuary, 그리고 이후 음반직배에 의해 타격받은 지구레코드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RoadRunner 컴필레이션 시리즈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Pantera, Sepultura 등의 쓰레쉬 메탈 계열의 음악들이었습니다. 


특히 Marty Friedman이 Cacophony 해체 이후 Megadeth에 참여해 명반 Rust of Peace에서 보여준 Tornado of Souls와 Hanger18의 미친 속주는 지금 들어도 짜릿합니다. 

그 곡들은 제 마지막 10대 시절 주제곡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 당시를 대표하던 또 하나의 분파가 바로 헤어메탈, 글램메탈이라고 불리는 그룹들이었죠. 

Dokken, Motley Crue, Ratt, Poison 같은 그룹들도 제법 인기가 있었습니다. 

한껏 꾸민 외모에, 음악은 그다지 강렬하지도 않았지만, 그 위악성이나 마초성은 혀를 내두르게 했습니다.

 

그런 글램메탈의 토양 위에서 갑자기 나타난 별종이 바로 Guns'n'Roses였습니다. 

Metallica와 함께 [메탈이 잠시 지구를 지배하던 때] 그 인기의 정점에 서있었던 그룹. 

주관적 인상에 따르자면, Metallica가 압도적 존재감을 자랑하던 티라노사우르스라면, 

Guns'n'Roses는 날렵한 몸놀림과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벨로시 랩터와 같았습니다.


아무튼 80년대 말

그때는 그야말로 공룡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세상물정 모르던 우리는 메탈제국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록 음악의 정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만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그 몰락은 시작되고 있었고, 

어쩌면 마치 자신들의 종말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는 듯 

공룡 메탈 그룹들이 각자 최후의 대작들을 쏟아내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Metallica의 ‘Metallica’와 Guns'n'Roses의 'Use your illusion1,2'가 그 정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Nirvana가 등장했습니다.


처음 Nirvana의 Bleach 앨범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듣던, 바늘조차 들어갈 틈 없이 꽉 짜여진 구성에 폭주하는 듯한 드럼, 그르렁거리던 보컬의 쓰레쉬메탈이 마치 철창에 갇힌 채 그저 관습적으로 관객을 향해 포효하는 서커스장의 집채만한 호랑이 같이 느껴졌던 반면, 

Nirvana의 음악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이를 찾아 홀로 야산을 어슬렁거리던 늑대와 직접 눈을 마주친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매너리즘에 젖어 쇼비지니스에 몸을 맡긴 채 과장된 야만을 연기하는 이들에게선 느낄 수 없던  진정한 광기에 온몸에 전율이 쫙 흐르더군요.

 

그리고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돌아와보니,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있더군요.


70년대를 주름잡았던 거장적 연주의 프로그레시브가

DIY정신의 펑크에 격퇴되고 만 것처럼,


제 어린시절을 사로잡았던 그 많던 공룡들은

모두 다 사라져버리고 없었습니다.


보컬과 함께 선두에 서서 마치 남근처럼 우뚝 세우고 화려하게 주물러대던 기타는 드럼 옆으로 물러나고, 온통 얼굴을 찡그린채 위악스런 표정으로 내밀던 혓바닥은 헝크러진 머리카락 속으로 들여다보이는 우수어린 눈빛 아니면 냉소적 미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웅장한 서사와 대책없이 넘쳐 흐르던 자신감의 표출은 패배자 정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뀐 분위기가 슬프게도 그당시의 제게 딱 맞았습니다.

철없던 십대시절 헤비메탈이 제게 폼나는 옷이었던 것처럼,

군대를 제대하고 현실에 덩그러니 놓여진 제게는 

이미 바뀌어버린 음악환경이 또 잘 맞는 옷이 되었습니다.

한때의 열병처럼 그렇게 헤비메탈은 저에게서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음악취향도 완전히 바뀌어,

그들의 이름은 추억 속에서만 가물가물 할 뿐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끔찍하고 지독한 마초성에도 불구하고,

문득 그때의 음악들이 풋풋하고 순진하게만 느껴지네요.


하긴 Vampire Weekend나 Big Thief와 같이 극도로 영악한 요즘의 록 그룹들(절대 나쁜 뜻이 아닙니다)에 비하면 

그들의 음악은 참 순진한 면이 많았죠.



서두에 말씀드린 것 처럼, GnR의 모처럼만의 싱글 Perhaps를 듣다가 추억에 취해 술주정하듯 주절거려 봤습니다. 그 시절을 추억하시는 분 계시다면, 한번 쯤 찾아 들어보셔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 단, 라이브는 듣지 마세요. 엑슬로즈의 목 상태가 참담합니다.




ilvin ilvin
9 Lv. 1896/2000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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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꽃미남 뚝섬꽃미남님 포함 12명이 추천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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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술술 읽히면서도 절절한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최근에는 프로들이 만는 잘짜여진, 생각할 필요 없이 꽉찬 kpop들이 대단합니다. 사실 엄청 난것 같습니다. 그냥 즐기기도 벅차니까요.

하지만 대학 동아리 필수, 열정을 불태우는 락밴드 감성은 항상 그리운 것 같습니다.
18:47
23.09.05.
profile image 2등
ilvin 작성자
K-POP은 저도 즐겨듣습니다. 특히 그 밀도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첫 음악 감상의 개시가 락이서 그런지 락음악에 대한 편애는 감출 수가 없는 것 같아요.
19:22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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