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체험단

가우디오 네어 & 클라리덴, 음악용 이어폰의 탈을 쓴 초정밀 음향 분석기

루릭 루릭
2166 0 0


높은 산의 이름을 딴 두 개의 하이엔드 이어폰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생 브랜드의 신생 이어폰을 접할 때는 아주 짜릿한 설렘을 느낀다. 그리고 본인을 포함해 이 제품 두 개를 리뷰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단어를 반복할 것이다. '스위스'라고.



가우디오(Gaudio)는 스위스에서 핸드 메이드로 이어폰을 생산하는 신생 인이어 모니터(In-ear Monitor) 회사다. 먼저 회사의 이름부터 아리송한 느낌이 들 텐데, 가우디오 쪽에서 보내준 설명을 요약해보겠다. Gaudio는 라틴어 Gaudium에서 따온 단어로, Gaudium은 기쁨, 희열이라는 뜻이며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선(착함)의 소유'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이기도 하다. (본인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를 떠올렸으나 역시 섣부른 짐작을 해서는 안 됨을 깨달았다.) 가우디오의 본사는 스위스 남부에 있으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알프스에 둥지를 틀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든 이어폰 두 개도 산의 이름을 갖게 됐다. 두 이어폰의 디자인이 거의 동일해서 아직은 구별이 어렵겠지만 일단 이름의 뜻부터 확인해두자.



네어(Nair)는 해발고도 3,056미터의 산이며 로만슈어로 '검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그리종(Grisons)과 우리(Uri) 주의 가운데에 위치한 산으로 코르빌리아(Corvigila) 스키 리조트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피츠 네어(Piz Nair)이다. 이 봉우리는 스위스 관광청에서도 추천하는 여행 명소이며, 사진을 찾아보면 시원한 공기가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멋진 풍경이다.



클라리덴(Clariden)은 해발고도 3,267미터의 산이며 라틴어 Clareta 또는 Clarus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는 '밝은' 또는 '빛나는'이라는 뜻이다. 이 산은 글라루스(Glarus)와 우리(Uri) 주의 경계를 가르고 있다. 산의 남쪽은 커다란 빙하로 덮여 있으며, 반대편의 깎아지른듯한 경사를 통해 클라우젠패스(Klausenpass) 고개와 그를 둘러싼 골짜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산 이름 두 개만 검토하는 것으로도 이미 스위스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하지만 스위스 여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네어와 클라리덴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면 자신의 청각을 통해 두뇌 속에서 스위스 산악 지대의 깨끗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두 이어폰의 소리가 청취자에게 그러한 감각적 상상을 하게 만든다. 또한, 두 제품 모두 감성보다 지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인다. 이는 본인의 주관적 판단에 불과하지만, 네어와 클라리덴의 국내 출시 후 청음 매장에서도 비슷한 사용기가 많이 나올 듯하다. 그 정도로 가우디오의 이어폰들은 명확한 주제를 갖고 있다.



물리적인 완성도가 탁월하다



네어와 클라리덴은 동일한 디자인의 패키지이며 스위스 국기의 색상인 레드와 화이트로 자아를 표출한다.(??) 두 제품 중 하나를 구입하겠다면 반드시 박스 후면의 모델명을 확인하는 게 좋겠다. 가격도 동일하기 때문에 헛갈리기 쉽다. 박스는 위와 아래 부분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열게 된다. 위쪽에는 이어폰 본체, 아래쪽에는 캐링 케이스가 담겨 있다.



케이블이 장착된 이어폰을 꺼내고 나면, 가죽 재질의 캐링 케이스 안에서 다섯 가지 크기의 파이널 E 이어팁과 청소 도구를 볼 수 있다. 파이널 이어팁들을 두 줄로 모아서 보관해주는 플라스틱 구조물이 편리하다. 가우디오 이어폰들은 금속 노즐에 깊은 구멍(보어)이 있으므로 음악을 듣고 나면 귀지 청소를 꾸준히 해주는 게 좋겠다.





사진에서도 이 물건들의 중량감이 전달될 것이다. 네어와 클라리덴은 두툼한 알루미늄 합금 케이스를 지녔으며 노즐도 단단한 스테인리스 스틸로 되어 있다. 둘 다 밸런스드 아머처 드라이버를 3개씩 탑재했는데 금속 하우징이 굉장히 단단하고 은근히 묵직하다. 이렇게 금속 덩어리로 된 이어폰은 흠집의 예방을 위해서 좌우 유닛을 나눠 담는 관리가 필요하다. 기본 포함되는 캐링 케이스에 담아서 지정된 장소에 둔다면 문제가 없으나, 그렇게 이어폰을 담은 케이스를 들고 이동한다면 좌우 유닛이 서로 충돌해서 긁힐 확률이 높아진다. 캠프파이어 오디오의 파우치를 별도 구입해서 쓰거나 이어폰 한 쪽을 헝겊으로 감싸두는 등의 여러 방법을 써보자.




네어와 클라리덴을 겉으로 구별하는 방법은 로고와 보어(Bore)에 있다. 좌우 구분을 위해서인지 가우디오 로고가 오른쪽 유닛에만 있는데, 네어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로고이며, 클라리덴은 검은색 바탕에 빨강색 로고를 쓴다. 이어팁을 분리해서 보면 노즐의 보어 숫자도 다르다. 둘 다 트리플 드라이버 이어폰이지만 네어는 '2 보어'이며 클라리덴은 '3 보어'를 사용한다.




스위스 핸드 메이드. 이 단어 하나로 신뢰감을 얻는 유저가 많을 것이다. 네어와 클라리덴은 알루미늄 합금 하우징의 표면과 외곽선이 매우 깨끗하다. 스테인리스 스틸 노즐도 더욱 두껍고 튼튼한 구조로 되어 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물리적인 완성도가 탁월하다는 뜻이다. 채널당 BA 드라이버 세 개를 담았으니 이어폰을 더 작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둘 다 알루미늄 합금 하우징이 꽤 큰 편이다. 그 이유는 소리의 설계와 더불어 안정적 착용도 배려하기 위함이다. 커스텀 이어폰의 쉘 디자인처럼 사람의 귓바퀴 안쪽 형태와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요즘은 3D 프린팅 기술 덕분에 금형 제작을 하지 않고도 수많은 프로토타입 하우징을 만들 수 있는데, 네어와 클라리덴의 금속 하우징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완성됐을 것이다. 실제로 귀에 끼워보면 파이프 형태의 노즐만 외이도 입구로 깊이 들어오며 하우징 바깥쪽은 귓바퀴 속에 안착되어 이어폰이 흘러내리지 않게 지지해준다.





하얗게 빛나는 기본 케이블도 눈에 띈다. 이 케이블은 고순도 은 도금 동선 소재이며 3.5mm 플러그와 Y-스플릿 파트도 금속으로 제작됐다. 일반적인 2핀 커넥터를 사용하므로 다른 커스텀 케이블의 매칭도 쉽겠다. 본인은 기본 케이블을 기준으로 소리 감상문을 작성했으며 다른 커스텀 케이블은 끼워보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이후 설명할 두 이어폰의 소리 특징 때문이다. 개발자가 의도한 음색을 그대로 전달 받는 것이 네어와 클라리덴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물론, 이 제품을 직접 구입하는 여러분은 자유롭게 커스텀 케이블을 매칭해봐도 좋겠다.




SOUND


가우디오 네어와 클라리덴은 드라이버 감도가 높은 BA 이어폰이다. 별도의 헤드폰 앰프에 연결하기보다는 고해상도 DAP의 헤드폰잭에 바로 연결하는 편이 낫겠다. 구동하기 쉬운 이어폰들은 그만큼 기기의 화이트 노이즈를 잘 들려주기 마련이다. 그래도 힘찬 소리를 원한다면 화이트 노이즈가 적은 소출력 앰프를 골라보자. (*참고 : 앰프의 노이즈는 제작자의 회로 설계에 따라서 결정되며 꼭 출력에 따라서 판단되는 사항은 아니다.) 두 이어폰의 특기가 '정밀도'이기 때문에 높은 출력보다는 고요한 배경의 확보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본인은 이어폰 헤드폰 외에도 한동안 하이파이 오디오 제품들의 소리를 듣고 감상문을 쓴 적이 있다. 그 때 스위스 오디오 브랜드를 세 개쯤 접했는데, 소리 성향은 각자 다르지만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우 깨끗하고 정밀하면서도 고음에 달콤한 맛이 있는 소리다. 저음이 강하게 부각되지 않으며 중.저음 영역의 잔향이 적거나 거의 없는 것도 특징이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가우디오의 이어폰 두 개에서 거의 동일하게 재발견했다.


매우 깨끗하고 정밀한 소리인데 고음의 단맛이 있다.


응답이 빠르고 극히 정확한 인상을 받게 한다.


하우징의 공진 제어 설계로 소리 정확도를 보강한다.


깔끔하고 건조한 음색으로 냉정함과 시원함을 모두 지녔다.


이 공통적 특징들은 재생기와 앰프를 바꿔도 그대로 유지된다. 자신의 특징이 매우 강한 재생기나 앰프에서도 네어와 클라리덴의 고유 음색을 연한 배경처럼 느낄 수 있다. 본인이 듣기에 대단히 섬세하고 정교한 소리이지만 소스 기기와 청취자 사이에서 사라지는 이어폰은 아니다. 스위스 오디오의 개성, 즉, 스위스 오디오 회사들이 추구하는 '고유의 중립적 음색'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이 가우디오 이어폰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색다른 경험을 줄 것이다. 일단은 스위스 산꼭대기의 차갑고 맑은 공기를 떠올려보시기 바란다.



가우디오는 초고해상도 사운드의 이어폰 두 개로 속칭 '분석용'과 '음감용'의 대표 사례를 보여준다. 음색이 비슷한데 소리의 성격과 사용 목적이 다르다. 둘 다 타협없는 클리어 사운드로 레퍼런스 이어폰이 되겠으나, 네어는 소리 분석용이며 클라리덴은 소리 감상용으로 둘 수 있겠다. 참고 삼아서 과거의 측정 기준과 현재의 측정 기준을 대조해본다면 네어와 클라리덴 모두 플랫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네어는 711 시절의 플랫이고 클라리덴은 새로운 5128 시대의 플랫이라고 본다. 둘 다 711 측정치로 표기됐지만 본인의 청취로는 그렇다. 이에 대해서 설명을 할 텐데, 다음의 문단은 자신의 귀로 듣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이라면 건너뛰어도 좋다.


===(측정 관련 설명 시작)===


IEC 60318-4(IEC 711 또는 IEC 60711이라고 불림)는 통신 측정 규격으로 시작된 후 이어폰 헤드폰 측정에서 40년 동안이나 적용되어 왔다. 711은 100~10,000Hz 영역만 측정하며, 이 영역도 인간의 실제 청감과 일치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Brüel & Kjær가 10년 넘게 개발하여 새로 만든 것이 5128 헤드 시뮬레이터 규격이다. 인간의 청감과 훨씬 가까운 결과를 얻도록 개발하여 20~20,000Hz 영역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기존의 이어폰 헤드폰들을 5128로 측정하면 711의 주파수 응답 형태에서 보이던 피크(뾰족)와 딥(움푹)이 사라지고 저음이 조절되어서 나온다. 특히 저음의 양 변화는 충격적일 정도인데, 711 측정에서 저음이 강한 것처럼 나오던 이어폰들이 실제로는 적당한 저음이었음을 알려준다. 711 규격은 마이크까지 짧은 직선 파이프 형태라서 이어폰을 측정할 때 인간의 이어 커널 용적이 더 작게 반영되어 음압이 올라가고 그만큼 저음이 강하게 측정된다. 이에 맞춰 평탄하게 소리를 만들면 실제로는 사람이 듣는 소리보다 저음이 약하게 된다. 가우디오 네어의 저음이 두텁고 든든하지만 강하지는 않은 이유다. 5128 규격은 인간의 구부러진 이어 커널 형태를 거의 그대로 반영하여 이어 커널 용적이 711보다 커졌다. 이에 맞춰 소리를 평탄하게 만들면 실제 청취에서는 711 측정으로 평탄하게 나오는 소리보다 저음이 강하게 들린다. 가우디오 클라리덴의 저음은 아주 깊고 든든한 울림으로 실제 저음 악기의 울림과 일치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711 규격으로 보면 저음이 더 강조된 것으로 분류된다.


가우디오는 웹사이트에서 711 규격으로 측정한 두 제품의 주파수 응답 그래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5128로 측정한다면 클라리덴이 거의 플랫 사운드로 분류되며 네어는 고음과 저음이 조금 약하면서도 중음이 강한 이어폰으로 분류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측정과 더불어 개발자가 직접 청취해보면서 만든 소리이고, 어느 기준을 쓰든 간에 개발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어느 오디오 회사든 제품의 소리를 완성하는 것은 '특정 인물'임을 기억해두자.


*B&K 5128 소개 자료 URL

https://www.head-fi.org/threads/headphone-measurements-the-new-standard-part-1.937301/#post-15735920


===(측정 관련 설명 끝)===



본인의 판단에서, 네어는 음악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분석하는 이어폰이며 클라리덴은 음악을 감성적이고 현장감 넘치게 공연하는 이어폰이다. 하지만 둘 다 음색 특징이 거의 없어서 중립적 소리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어는 스튜디오 레코딩 음반, 가우디오는 콘서트홀 등의 라이브 레코딩 음반에 맞는다. 그런데 둘 다 음악 장르에 따른 특징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둘 다 소리의 응답 속도가 매우 빠르며 잔향이 없어서 건조한 음색을 낸다. 시원하게 냉각됐지만 물기가 없는 드라이 아이스라고 하겠다. 특히 네어는 연구실 속 드라이 아이스 같은 진짜 건조함을 지녔다. 클라리덴은 더 풍부한 저음 울림과 살짝 밝게 양념된 고음으로 그나마 덜 건조한 느낌이지만 드라이 아이스라는 본성은 네어와 같다. 두 이어폰에서 뭔가 감성적 잔향을 느낀다면 그것은 음반을 만든 사운드 엔지니어가 그 잔향을 음악에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진공관 오디오의 편안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원한다면 네어와 클라리덴에는 접근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두 이어폰은 컨슈머 오디오 프로덕트의 가면을 쓴 초정밀 음향 분석기에 가깝다.



한 가지 참조해둘 점이 있다. 네어와 클라리덴은 분명히 다른 주파수 응답 형태를 지니고 있으나, 앞서 언급했던 '스위스 오디오 특징'은 굉장히 흡사하다. 둘을 ABA 순서로 비교 청취하면 뚜렷하게 구별되지만, 비교 청취 기간이 길어질수록 둘 다 본성이 같은 이어폰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네어의 높은 중음이 강하기 때문에 체감 볼륨이 더 크게 들리는데 이것도 재생기 볼륨을 맞추면서 들어보면 흐린 기억 속으로 잊혀진다. 그러니 두 이어폰의 소리를 들으면서 '차이가 없게 들려... 나는 막귀인가봐...'라며 좌절하지는 말자. 클라리덴 산에 올라서 '여기가 피츠 네어로구나!'하며 즐거워해도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산이 모두 절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Gaudio Nair



첫 청취부터 고.중음이 보강된 플랫 사운드가 떠오른다. 단단하게 끊어서 치는 저음과 더불어 낮은 고음과 중음의 선이 굉장히 굵고 강하다. 예전 측정 기준 711에서 평탄하게 나오는 소리이지만 자연스럽고 차분한 소리를 상상해서는 안 되겠다. 고.중.저음의 균형이 잘 맞는데 고.중음이 더 묵직하며 소리 전체가 놀라울 정도로 힘차다. 이티모틱 리서치의 구형 ER4 시리즈 또는 슈어의 SE315, SE425와 같은 플랫 사운드를 선호한다면 네어의 소리에서 '헐크 같은 플랫 사운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로 소리가 굵다는 뜻이다. 하이파이 헤드폰 또는 스피커에서 듣는 평탄한 소리를 이어폰으로 체감하는 셈이다.


청취자의 취향으로 본다면 네어는 요즘 출시되는 이어폰들의 저음이 하나같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유저에게 어울린다. 이어폰 헤드폰의 소리가 '오디오룸에서 듣는 스피커 소리'를 시뮬레이션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의 기본 이론이지만, 모든 유저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머리 속에서 깔끔한 스테레오 사운드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사람도 많다. 네어는 예전 기준에서 평탄하고 깨끗한 저음을 재생하며, 이 저음이 청취자의 머리 안쪽으로 명료한 수평선 이미지를 만든다. 그 위에서 매우 뚜렷하고 정밀하며 선이 굵은 고.중음의 레이어(Layer)가 형성된다. 차가운 연기가 피어 오르는 드라이 아이스를 갈아서 모래처럼 만들고 그 표면을 손 끝으로 만져본다고 상상해보라. 그것이 가우디오 네어의 소리 감촉이다.



보컬과 현악기 소리를 들을 때 고막에 더 가깝게 들리는, 앞으로 나오는 타입을 선호하는가? 그렇다면 클라리덴보다 네어가 훨씬 마음에 들 것이다. 남성 보컬과 여성 보컬 모두 높은 중음이 두텁게 보강되어서 완전히 앞쪽으로 나오며, 스튜디오에서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노래하는 경우는 귓구멍에 숨결이 닿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이올린은 음색 변화가 거의 없으며 연주자가 매우 빠르고 힘차게 활을 다루는 듯하다. 첼로의 소리는 낮은 중음과 높은 저음의 울림이 클수록 인간적인 느낌을 받기 쉬울 텐데, 이 점에서는 네어의 소리가 무척 냉정한 편이다. 하지만 첼로의 현 굵기를 너무나도 정밀하고 강력하게 묘사해준다. 첼로 주자의 감정이 아니라 오로지 연주 실력만 정확히 읽어내는 기분이다.



이 때 굳이 타 브랜드 제품을 꺼낼 필요는 없겠으나, 고.중음의 굉장히 굵은 선과 과하지 않은 저음의 처리는 메제 오디오의 라이 펜타와 상당히 비슷하다. 이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가 되겠으나, 라이 펜타의 소리 느낌을 스위스 오디오 방식으로 접한다고 해도 좋다. 대형 헤드폰에서도 전체적으로 평탄하며 각 음 영역이 뚜렷하게 들리고 저음도 알맞게 든든한 소리를 떠올려보자. 거기에 약간의 건조함과 깔끔한 음색이 조합된 헤드폰이라고 한다면 젠하이저 HD800이 나온다. 네어의 음색을 계속 접해보면 HD800의 이어폰 버전 같기도 하다. 즉, 여러 측면에서 이 제품이 헤드파이 골수 매니아들에게 희소식이 될 듯하다.




Gaudio Clariden



플랫 사운드에서 고음과 저음을 완만하게 강조한 느낌이다. 네어보다 중음 비중이 조금 낮아서 소리 선이 조금 더 가늘게 다가온다. 그 대신 디테일의 묘사가 더욱 강력하며 공간이 확장되고 입체감도 살아난다. 사람의 귀가 더 강하게 듣는 중음을 적당히 낮춰서 그만큼 고음과 초고음을 세밀히 듣게 만드는 사운드 튜닝 기법을 보인다. 음악 속의 여러 악기 소리를 세밀하게 분리해서 듣고 싶다면 클라리덴이 '해상도 특화 이어폰'으로 다가올 것이다. 초저음의 진동도 선명해서 연주 공간의 공기 울림을 만들기에 유리한 저음이라고 하겠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기준에서 볼 때 평탄한 소리인데 조금 더 음악 감상이 즐거워지는 양념이 있다.


여성 보컬에 좋은 이어폰을 찾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요구는 제법 일관적으로, 고음이 더 달콤하게 나온다면 1단계를 통과하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클라리덴은 '달콤한 여성 보컬 이어폰'의 대표 주자가 된다. 푹신한 밀가루처럼 곱게 갈아둔 설탕을 드라이 아이스 위에 뿌려서 손 끝으로 만진다고 상상해보자. 그 손 끝을 혀로 핥아보면 약한 단맛이 날 것이다. 그것이 클라리덴의 소리 감촉이자 미각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음이 '약간' 낮춰져 있음에 주목하자. 이 이어폰은 여전히 중음의 비중이 높으며 특히 낮은 중음이 굵게 들린다. 여성 보컬과 남성 보컬 모두에서 목소리의 낮은 음이 더욱 두터워서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무대의 자기 위치에 있을 뿐이다.



클라리덴의 저음은 네어보다 확실히 강조되어 있지만 하만 타겟에서 영감을 받아 튜닝된 요즘 이어폰들에 비하면 적당한 양의 저음이 되겠다. 콘트라베이스의 거대한 현이 튕겨질 때 쾅하고 머리가 울릴 정도는 아니지만 콘트라베이스의 거대한 크기는 확실히 전달된다. 콘서트홀의 오케스트라 연주 녹음을 들어보면 클라리덴의 초저음이 공간의 공기 움직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또한 초저음의 울림이 짧게 끊어지지 않고 약간 번지도록 설정한 점이 마음에 든다. 이것이 각종 저음형 현악기들의 소리에 보다 풍성하고 포근한 느낌을 더해준다. 또한, 소리의 전체적 감촉을 더 부드럽고 온화하게 만들어서 약간은 감성적인 느낌도 받을 수 있다. 클라리덴의 이러한 성향을 네어와 직접 비교하면... 네어는 정말로 객관적이며 냉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클라리덴을 본인이 보유한 70~100만원대 커스텀 이어폰 몇 개와 비교 청취해보면 클라리덴도 제법 객관적이고 냉정한 편임을 알 수 있다. 다시 강조하건대 네어와 클라리덴은 주파수 응답 형태가 다를 뿐 본성은 거의 동일한 이어폰이다. 공진 제어로 소리의 잔향을 줄여서 언제나 깔끔하고 건조한 맛을 유지하며, 매우 높은 해상도와 중립적 음색으로 레코딩의 원본 전달에 집중한다. 여기에서 클라리덴은 고음 영역의 살짝 달콤한 음색과 저음 영역의 은근히 풍만한 울림을 더한다. 사운드 이미지의 형성 기법도 네어와 조금 다른데, 중음의 조절로 인해 저음의 수평선이 머리 안쪽과 더불어 귀의 근처까지 더 넓게 펼쳐진다. ■



*이 리뷰는 셰에라자드의 고료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좋은 제품을 찾아서 직접 검증, 분석한 후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제가 원하는 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점은 글 속에서 직접 판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고공유스크랩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