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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단

메제 리릭, 예쁘고 편안한 소리인데 소름 돋는 고해상도의 밀폐형 헤드폰

루릭 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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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명

메제 오디오 리릭 (Meze Audio Liric)


*특징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의 풀사이즈 밀폐형 헤드폰

휴대 음향 기기 연결에 대응하는 포터블 헤드폰(을 지향함)

하이파이 오디오 헤드폰과 생활 소품용 헤드폰을 겸하는 제품


*장점

오랫동안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소리

오랫동안 편안히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

비싼 가격에 걸맞은 초고해상도 사운드

놀라운 음 분리 능력, 응답이 빠르고 정밀한 소리

특유의 밝고 예쁜 고음

웅장한 초저음, 포근하면서도 은근한 펀치가 있는 높은 저음

밀폐형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공간감

매우 깨끗한 사운드 이미지 생성

소스 품질에 까다롭지 않은 헤드폰


*단점

고음의 뚜렷한 특징이 취향 또는 음악 장르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음

소리 선이 가늘고 박력이 없어서 심심하게 들릴 수 있음


*요약

메제 리릭은 메제 엘리트처럼 청각 자극이 없고 편안하며 부드러운 감촉의 소리를 지닌 '밀폐형' 헤드폰이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인체공학적 디자인으로 장기간의 사용에 적합하며, '음악의 원본을 고성능으로 전달하는 트랜스듀서'와 '즐겁고 안락한 휴식'을 동시에 추구한다.



멋진 디자인의 99 시리즈 헤드폰에 이어서 끝판왕급 헤드폰으로 엠피리언과 엘리트를 내놓은 메제 오디오인데, 이번에는 '리릭(Liric)'이라는 하이엔드 밀폐형 헤드폰을 출시했다. 200만원대의 가격은 분명히 쉽지 않은 장벽이지만 헤드폰 애호가 사이에서는 또 하나의 희소식으로 볼 수 있겠다. 불과 10년 전의 기준으로만 생각해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좋은 소리를 내는 풀사이즈 개방형 헤드폰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나, 진짜 하이엔드로 분류할 만한 고급 밀폐형 헤드폰은 드물다. 그 이유는 간단히 생각하면 사운드 튜닝을 할 때 밀폐형 헤드폰이 훨씬 어렵기 때문일 텐데...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밀폐형 헤드폰은 뮤직 스튜디오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는 도중에 음악을 재생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저음이 더욱 보강된 소리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폴딩 디자인 등을 갖춘 작은 크기의 밀폐형 헤드폰을 쓰기 마련이다. 거대한 크기의 하이파이 오디오용 헤드폰을 밀폐형으로 만든다는 것은, 집이나 사무실 또는 카페에서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면서 하이파이 사운드를 듣겠다는 뜻이다. 또한 스피커로 소리를 틀기가 어려운 실내에서 홀로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고급 밀폐형 헤드폰을 쓰기도 한다. 이런 물건은 실외용 ANC 헤드폰들보다는 수요가 적지만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메제 오디오는 엠피리언이라는 하이엔드 개방형 헤드폰에서 더욱 진화한 '엘리트'를 개발한 후, 엠피리언에서 쌓은 노하우에 새로운 센스를 더해서 약간은 대중적인(?) 고급 밀폐형 헤드폰을 만들어냈다. 리나로(Rinaro)의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기술이 든든하게 뒷받침을 하고 있으니, 밀폐형 헤드폰에서도 엠피리언이나 엘리트처럼 소름 돋는 초고해상도의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안토니오 메제(Antonio Meze) 특유의 디자인으로 고급진 외형과 편안한 착용감까지 고스란히 확보한다. 여기에 약간의 양념이 들어간 음색과 다양한 기기에 연결할 수 있는 범용성을 더했더니... 비싸지만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좋으며 생활 속에서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풀사이즈 밀폐형 헤드폰이 나왔다.


여기에서 가격대 성능비라는 말이 나오니 황당한 분들도 있을 터인데, 국내 가격 400만원대의 엠피리언에 육박하는 소리를 가볍고 쓰기 편한 밀폐형 헤드폰으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메제 리릭의 가성비가 성립될 것이다. 본인의 귀로는 리릭의 소리 성격이 엘리트와 더 비슷한 느낌이지만, 어쨌든 '엠피리언을 휴대용으로 만들었다!'라는 안토니오 메제님의 의도는 확실히 알겠다.




나는 고급이다!! 라고 외치는 헤드폰



메제 리릭을 구입한다면 일단 커다란 박스부터 받게 될 것이다. 이 박스는 고이 보관해두고, 이후에는 전용 케이스 하나에 헤드폰 본체와 모든 구성품을 깔끔히 담아서 들고 다닐 수 있다. 리릭의 케이스는 휴대의 편의를 추구하면서도 메제 오디오의 디자인 코드를 그대로 지닌 모습이다. 헤드폰의 형태와 잘 맞춰졌을 뿐만 아니라 케이스의 생김새도 메제 오디오 제품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케이스의 내부는 뽀송한 벨벳으로 덮여 있어서 리릭을 잘 보호해주며 시각적으로도 고급스럽다. X 모양의 밴드로 케이블을 고정해주고, 테두리의 지퍼에는 방수 처리가 되어 있어서 안심하게 된다. 유럽 여행 다녀온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는 날씨에는 방수 지퍼가 상당히 중요하게 된다.



메제 리릭은 3.5mm 규격의 탈착식 케이블을 사용하며 1.5미터 케이블과 3미터 케이블이 기본 포함된다. 또한 6.3mm 변환 젠더와 항공기 어댑터가 있으며 이런 액세서리와 케이블을 모두 담을 수 있는 파우치가 제공된다.



*케이블 호환 여부 : 메제 99 시리즈용 케이블은 메제 리릭과 호환된다. 단, 리릭의 기본 케이블은 헤드폰 이어컵에 끼우는 3.5mm 플러그의 지름이 더 굵어서 99 시리즈에는 끼울 수 없다. (리릭의 케이블을 99 시리즈에 끼울 일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혹시 메제 리릭에 다른 회사의 커스텀 케이블을 장착하고 싶다면 3.5mm 플러그의 지름이 10mm 이하인 것으로 고르기 바란다.



미국의 오디지(Audeze)가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회사라면, 루마니아의 메제 오디오는 수완이 좋은 디자이너가 엔지니어와 팀을 이뤄서 만든 회사로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메제 오디오의 헤드폰들은 인체공학에 충실하며 심미적으로도 특별한 인상을 준다. 쉽게 말하면 '보기에 예쁜데 착용도 편하다'는 뜻이다. (이 점에는 메제 이어폰들도 포함된다.) 메제 리릭의 디자인은 큼직하면서도 날씬한 이어컵과 사람의 머리 외곽선에 잘 맞춰지는 헤드밴드로 엠피리언과 엘리트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단, 리릭은 휴대하는 헤드폰이므로 엠피리언처럼 넓은 해먹 모양의 헤드밴드를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의 머리 정수리를 누르지 않도록 넓게 펼쳐진 일체형 헤드밴드를 사용하며, 헤드밴드 내부에는 통풍 효과가 좋은 패브릭 쿠션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통풍 효과를 더욱 크게 하기 위해서 패브릭 쿠션에 플러스 모양의 공기 통로까지 더했다.



리릭의 이어패드는 인조 가죽 소재이며 유저의 귓바퀴에 닿는 안쪽만 벨벳으로 되어 있다. 이는 착용의 감촉을 뽀송하게 유지하는 장점이 있으며 헤드폰의 소리에도 영향을 준다. 리릭의 드라이버 안쪽 테두리에는 공기가 방출되는 통로가 있어서 이어패드의 폼 쿠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즉, 이어컵 내부에서 발생하는 공기 흐름이 이어컵 뿐만 아니라 이어패드로도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패드에서 공기가 빠져나갈 부분이 필요하니 벨벳 소재를 혼합했을 터이다. 이러한 설계로 헤드폰 이어컵이 더욱 얇아질 수 있었고 이어패드 내부가 일종의 에어 챔버 역할을 해서 그만큼 공간감도 향상될 수 있다. 예전에 타 회사의 밀폐형 헤드폰에서 이어패드 속에 공기를 넣으려고 실리콘 튜브를 넣어둔 것을 봤는데, 메제 리릭도 그러한 개념을 응용한 듯하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메제 리릭의 이어패드는 분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헤드폰을 아주 오래 사용해서 이어패드가 닳게 된다면 판매처를 통해서 정식으로 수리를 요청하는 게 좋겠다.



메제 리릭은 첫 개봉의 순간부터 '나는 고급이다!!'라고 외치는 헤드폰이다. 손에 들어보면 의외로 가벼워서 놀라고(391g), 머리에 써보면 완전 부드럽고 푹신한 감촉에 홀딱 반해버리고 만다. 다시 손에 들고 살펴보면 이 물건이 '고급의 고급'인 이유가 보인다. 플라스틱 부품이 하나도 없는, 오로지 금속과 가죽으로만 구성된 헤드폰이다. 이어컵의 테두리, 이어컵과 헤드밴드를 연결하는 요크는 마그네슘으로 만들었고 헤드밴드 길이를 조정하는 구리색 막대는 알루미늄 소재이다. 헤드밴드 속에는 강철 심을 넣어서 보강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인조 가죽으로 덮었다. 또한 마그네슘 파트에는 고급 카메라에서 볼 수 있는 코팅 처리를 해서 감촉과 외관이 모두 고급스럽다. 제품 색상의 선택에서도 무광 검정색과 구리의 색감을 조합해서 튀지 않는 단정함과 은근한 화려함을 모두 뿜어낸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메제 리릭은 커다란 밀폐형 헤드폰이다. 엠피리언보다는 확실히 작지만 실외용 ANC 헤드폰들과 비교하면 아주 큰 편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케이블이 휴대 음향 기기용으로 맞춰져 있으며 이어컵이 얇은 형태라서 실외 사용에도 좋을 듯하다. 비싼 물건이니 보통의 경우는 실내에서 쓰게 되겠지만 길을 걸으면서 쓰고 다녀도 된다는 뜻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 사람이 뭔가 비싼 헤드폰을 쓰고 다니는구나~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고가의 대여품이라서 본인이 직접 실외 테스트를 하지는 않았으나 소음 차단도 준수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내 사용에서는 확실히 주변 소음을 줄여주는 느낌이 있는데, 헤드폰 이어컵에 있는 작은 포트 때문에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현상도 있다. 구리 색으로 장식된 이 부분은 이어컵 내부의 공기 압력 조절을 위한 에어 벤트라고 한다. 이 벤트가 내부 드라이버와 바로 연결되므로 손으로 누르지 않도록 주의하자.




SOUND



메제 리릭에는 리나로의 MZ4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가 탑재됐다. 우크라이나의 리나로가 플래너 마그네틱 기술에서 30년 노하우를 쌓았다는 것이 뻥이 아님을 엠피리언과 엘리트의 소리로 확인한 바가 있다. MZ4 드라이버도 보이스 코일을 위 아래로 나눠서 저음과 고.중음을 분리 재생한다. 유저의 귓구멍 근처에는 고.중음을 집중하고 귓바퀴 영역에는 저음을 뿌려주는 방식이다.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는 진동판 면적이 사람의 귓바퀴보다 크기 때문에 이러한 설계가 중요할 수 있겠다. 사람의 귓바퀴가 원래 소리를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굳이 고.중음과 저음을 분리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도 가능하다. 그러나 엠피리언, 엘리트, 리릭의 삼형제가 내는 소리를 들어보면 극히 명료한 사운드 이미지로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리릭의 진동판 면적은 92 x 63mm로 엠피리언과 엘리트보다는 조금 작다. 그러나 여전히 드넓은 면적이며 진동판의 전체 무게가 0.08g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얇다. 진동판의 질량이 낮을수록 고음 재생에 유리해지고, 진동판의 면적이 클수록 저음 재생에 유리해진다. 이 헤드폰의 주파수 응답 범위가 4 ~ 92,000Hz로 굉장히 넓은 것도 당연하게 보인다.



*스마트폰과 DAP 헤드폰잭에도 끼워봅시다


생각해보면 엠피리언과 엘리트 모두 구동이 어려운 평판형 자석 헤드폰은 아니었다. 제품 설명을 보면 리나로의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는 마그넷의 자력이 그리 강하지 않으며 양도 많지 않은 편이다. (자석의 배치도 패널 형태가 아니라 보이스 코일에 따라서 구부러진 곡선 형태) 다른 회사들의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가 터미네이터 두뇌의 집적 회로처럼 대량의 마그넷 패널을 사용하는 것과 대조되는 점이다. 강한 자력의 마그넷 패널을 많이 사용하면 이론적으로는 더 강한 소리를 낼 수 있겠으나, 그 많은 자석들을 모두 빵빵하게 돌리려면 강력한 전기가 필요하다. 밀리와트(mW)가 아닌 와트(W) 단위의 헤드폰 앰프가 필수품이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리나로의 방법론은 적당한 전력으로 충분한 음압을 확보하며 소출력 기기로도 쉽게 구동하도록 배려하는 쪽이다.


메제 리릭은 드라이버 임피던스가 30옴이라서 대부분의 헤드폰 앰프에서 높은 출력이 나오는 32옴 근처에 접근하며 드라이버 감도 역시 100dB로 높은 편이다. 능률 좋은 다이내믹 드라이버 헤드폰처럼 쉽게 구동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휴대용 기기부터 거치형 기기까지 모두 연결 가능한 수준이다. 근본적으로는 거치형 헤드폰 앰프에 연결해서 듣는 게 좋지만, 유저의 사용 방식에 따라서 소형 헤드폰 앰프 또는 USB 동글 앰프에 연결해도 든든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스마트폰과 DAP의 헤드폰잭에 바로 끼워서 들어도 마음이 편할 정도다. 애플 아이폰 XS (랩케이블 라이트닝 어댑터 사용), 삼성 갤럭시 A9, LG V20 모두에서 70% 볼륨이면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고, 소출력 DAP인 아스텔앤컨 SR15의 3.5mm 연결에서는 95~100 볼륨으로 감상했다. (최대 볼륨은 150) 애플 맥 미니와 USB 연결된 젠하이저 HDVD800에서는 볼륨 노브를 10~11시 방향으로 두었으며, 그레이스 디자인 M900의 헤드폰 출력에서는 볼륨 60~70으로 감상했다.



*다운그레이드가 불가능한, 소름이 돋는 고해상도


가전 제품이든 음향 기기이든 제품 개발하는 쪽에서는 모델 간의 등급 차이를 둔다. 개발에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 모델이 더 비싸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이엔드 모델을 개발한 다음 그것을 응용해서 아래 등급의 모델을 만든다면... 아무래도 의도적인 다운그레이드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엠피리언에서 파생된 리릭이 그런 의심을 받기에 딱 좋을 것이다. 하지만 리나로의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는 다운그레이드가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부터 굉장한 고해상도 사운드 때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엠피리언, 엘리트보다 명확히 덜한 것이 아니라, 거의 동급인데 불과 몇 퍼센트 정도만 줄여둔 듯한 느낌이 든다.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헤드폰들과 비교 청취해봐도 메제 리릭의 소리 해상도는 4K 화면 그 이상이다.


이후 설명할 고음의 특징을 제외하면, 이 헤드폰은 현미경 같은 고해상도로 소리를 투명하게 전달만 하는 '음악의 고성능 트랜스듀서(Transducer)'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은 이미 메제 엘리트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음 분리 능력을 경험했기에 놀라지는 않았으나, 메제 리릭도 악기 소리를 세밀히 나눠주는 능력이 굉장하다. 초고음부터 초저음까지 아주 넓은 주파수 영역을 촘촘하게 나눠서 정밀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게다가 저음이 고.중음을 가리는 마스킹 현상이 아예 없어서 소리의 투명도가 극에 달한다. 음악을 면밀히 관찰할 때 굳이 청각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듯한 레퍼런스 헤드폰이다. 소리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파헤치면서도 예쁘고 부드럽게 음미할 수 있다.


*정밀한 소리인데 소스 품질에는 관대하다


소리 품질의 격한 향상을 말할 때 '카세트 테이프에서 컴팩트 디스크로 전환했을 때의 느낌'을 예로 들곤 한다. 메제 리릭의 첫 청취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비유이기도 하다. 카세트 테이프의 노이즈가 많고 느릿하게 풀어진 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거울처럼 깨끗해서 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소리로 뛰어든 느낌이다. 리릭의 토탈 하모닉 디스토션(THD) 수치는 전체 주파수 영역에 걸쳐서 0.15% 미만이라고 한다. 왜곡율이 매우 낮으며 응답 속도가 빨라서 잔향이 없고 정밀한 소리를 만든다. 그런데 이 헤드폰은 소스 품질에 아주 관대한 편이다. 뭔가 말이 안 되는 듯하지만 실제 청취에서 계속 그렇게 느꼈던 점이다. 아마도 리릭의 사운드 튜닝이 부드럽고 편한 성향이라서 그런 모양인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헤드폰잭에 바로 끼워서 들어도 거친 질감이나 밀도가 낮아지는 느낌이 거의 없어서 즐겁게 들을 수 있다. 또한 헤드폰 앰프를 바꿔서 연결해도 헤드폰 자체의 소리 성향과 음색이 대부분 유지되는 일관성이 있다.


물론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의 초고해상도 사운드이므로 재생기나 앰프가 지닌 음색 특징 - 소리의 건조함, 차가움, 포근함 등은 리릭을 통해서 그대로 전달된다. 굳이 기기 매칭에 대한 조언을 해본다면, 메제 리릭은 고음이 샤프하고 저음이 포근한 편이라서 이 점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차가운 소리의 기기에서는 더 차갑고 정밀한 소리를 내며, 따뜻한 소리의 기기에서는 고음에 밝은 양념이 추가되면서 저음이 더 포근하게 들린다.



*메제 엘리트가 떠오르는 저자극 사운드


리릭은 엠피리언에서 파생된 헤드폰이지만 사운드 튜닝의 주제는 엘리트와 닮았다. 누구나 처음부터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헤드폰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예쁘고, 선명하고, 질감이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처음부터 매료되는 화사하고 깨끗한 소리라서 진지한 오디오 애호가 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오디오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 이 점을 반대 시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 메제 리릭의 소리는 타 브랜드의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헤드폰들과 비교하면 소리 선이 가늘고 고막에 실리는 압력이 약한 편이므로 심심하게 들릴 수도 있다. 리릭도 엘리트처럼 오랫동안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저자극 사운드'를 지향한다.


이 헤드폰의 밀폐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개방 구조의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헤드폰들은 플랫 사운드에 초저음을 보강한 소리가 많지만, 본인이 사용해본 밀폐 구조의 평판형 자석 헤드폰들은 소리가 많이 달랐다. 드라이버에서 내는 플랫 사운드를 밀폐 구조의 하우징에서 변형시키는 것이다. 플래너 마그네틱 헤드폰을 밀폐형으로 만든다면 고음과 저음이 더 강조된 V 모양의 소리를 기본으로 예상해도 될 것이다. 메제 리릭의 경우는 초고음과 초저음이 크게 확장되어 있어서 U 모양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의 영향은 본인의 짐작일 뿐이며 리나로에서 드라이버 튜닝을 다르게 했을 수도 있다. 제품의 명칭부터 '사람의 감정을 담는 서정시'이다. 메제 리릭의 용도가 진지한 음악 감상보다는 라이프스타일 오디오에 가까워서 '더욱 즐거운 소리'로 만든 것이라면? 이 짐작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메제 엘리트처럼 자극이 없는 소리인데 고음과 저음이 더 살아나서 재미있다. 메제 리릭의 소리 성향은 저음의 재생 기법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초저음까지 단단함을 유지하면서 평탄하게 이어지는 저음이 아니라, 마치 다이내믹 드라이버 헤드폰처럼 포근하고 부드럽게 강조된 저음이다. 귀 아래쪽으로 낮게 깔리는 웅장한 초저음이 음악의 넓고 깊은 배경을 만들어준다. 높은 저음은 펀치가 푹신하면서도 은근히 강하게 때리는 느낌이 있다. 엘리트처럼 뭉게구름이 떠오르는 기체 감촉의 저음인데 펀치가 조금 더 강한 것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머리와 고막에 부담이 하나도 실리지 않는 지극히 편안한 저음이다.



*넓고 깨끗한 사운드 이미지, 밀폐형이 아닌 듯한 공간감


이 제품의 소개에는 Phase-X라는 기술 명칭이 수록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인지는 나오지 않았으나 밀폐형 헤드폰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위상 변형과 소리 왜곡을 제거해준다고 한다. 또한 리릭은 이어패드까지 에어 챔버로 사용하기 때문에 물리적 구조로도 공간 확장이 가능하다. 이 두 가지 특징 덕분인지 사운드 이미지가 놀라울 정도로 명료하며 넓고 깨끗하게 형성된다. 소리가 머리 둘레를 둥글게 감싸는 게 아니라 머리 중앙부터 좌우로 넓게 수평선을 펼치는 느낌이다. 또한 소리의 심리적 공간이 넓어서 자신이 정말로 밀폐형 헤드폰을 쓰고 있는지 의심할 정도가 된다. 개방형 헤드폰 못지 않은 공간 확장으로, 이어컵 안쪽에 훨씬 깊은 곳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다수의 밀폐형 헤드폰을 사용해본 유저라면 메제 리릭의 넓은 공간과 깨끗한 사운드 이미지에 꽤 놀랄 것이다.


*밝고 예쁜, 때로는 차갑고 샤프한 고음


메제 리릭은 이어패드에 고유한 역할이 있으므로 다른 소재의 이어패드로 교체할 수 없다. 즉, 어떤 음색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헤드폰 개발자가 의도한 개성일 것이다. 메제 엠피리언과 엘리트는 음색 특징을 최대한 제거하여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헤드폰이지만, 리릭은 고음에 뚜렷한 음색 특징이 있다. 짐작하건대 3~6KHz 영역을 낮추고 7~10kHz 영역을 강조해서 고음을 밝게 만든 듯하다. 플랫 사운드에서 고음을 더 강조하면 강하고 자극적인 소리가 되지만, 높은 중음을 낮추고 고음을 강조하면 자극이 줄어들고 음색이 밝아지며 해상도를 올릴 수 있다. 리릭의 고음은 처음부터 밝고 화려한 인상이 있으며 짜릿한 청량감도 있어서 시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앞서 컴팩트 디스크 이야기를 한 이유는 리릭의 고음이 인정사정 없이 밝기 때문이다. 매우 깨끗한 거울 앞에서 자신의 외모를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리릭의 고음은 때로는 차갑고 샤프해서 재생기와 앰프의 소리 특징을 강하게 타는 편이다. 만약 소스 기기의 음색이 차가운 쪽이라면 리릭의 소리가 더욱 차갑게 될 것이다. 반대로 소스 쪽 음색이 따뜻하다면 화사한 느낌만 고스란히 남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어느 기기에 연결하든 간에 리릭의 고음이 청각에 자극을 주지 않아서 오래 듣기에 좋다. 고해상도 음반을 감상할 때 이어컵 속에서 맴도는 초고음의 공기 느낌도 만족스럽다.



*중음의 선이 가늘고 고음이 화사하다 - 보컬, 현악기 소리의 변화


한 마디로 말해서, 메제 리릭의 소리는 평탄하지 않다. 엠피리언과 엘리트 모두 고.중.저음이 완만하게 강조된 느낌을 주었지만 리릭은 고음과 저음이 더 강조되며 상대적으로 중음이 평탄하거나 조금 낮춰진 인상이다. 이러한 주파수 응답 형태는 입체감을 살리는 데 좋지만 그만큼 소리가 멀게 들리는 특징도 있다. 리릭의 경우는 밀폐형 헤드폰에서 넓은 공간감을 내면서 그만큼 소리와 거리가 멀어진 셈이다. 혹시 고막까지 닿는 보컬의 숨결을 원한다면 다른 헤드폰을 찾기 바란다. 보컬을 가깝게 들려주기보다는 보컬의 디테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쪽이다.


리릭은 중음의 선이 가늘고 고음이 화사해서 보컬, 현악기 소리의 변화를 만든다. 현악기 소리에서 더욱 예쁘고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현을 굵게 긋는 파워보다는 오밀조밀하게 다루는 기교에 적합하다. 사람 목소리로 치면 남성 보컬의 두툼한 느낌보다는 여성 보컬의 미려하고 가냘픈 느낌에 어울리는 중음이다.


*영화 사운드의 디테일 묘사 능력, 넷플릭스 빈지 와칭은 보너스


실내에서 주변 소음을 줄여주며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음악을 듣게 해주는 풀사이즈 밀폐형 헤드폰이다. 이런 제품은 음악 감상 뿐만 아니라 영화 감상에도 자주 쓰일 것이다. 메제 리릭은 순수 음악 감상용에 가까운 사운드를 지녔는데 영화 사운드에서는 명료한 공간 묘사와 매우 높은 소리 해상도로 '디테일 묘사'에서 강점을 보인다. 액션 영화에서 박력과 스릴을 원한다면 게이밍 헤드셋이 더 좋겠고, 리릭을 영화 감상에 쓴다면 영화 속의 모든 소리를 훨씬 선명하게 듣게 될 것이다. 자연 악기 중심의 사운드 트랙을 지닌 감성적 영화에서는 홈시어터 시스템이 아닌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으로 영화를 보는 셈이라서 효과가 더욱 좋다. 또한 청각 부담이 없는 편안한 소리라서 여러 편을 이어서 보는 넷플릭스 시리즈 시청에도 어울린다. ■



*이 리뷰는 셰에라자드의 고료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좋은 제품을 찾아서 직접 검증, 분석한 후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제가 원하는 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점은 글 속에서 직접 판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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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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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받고 쓴 리뷰를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지...
13:06
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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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들어보고 싶군요 ㅎㅎㅎ
13:56
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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