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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단

AKG N400 두 달 사용기 - 무선 이어폰 소리 고급화의 징조를 발견하다

루릭 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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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음악 감상 방법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고가의 프리미엄 이어폰이 내는 훌륭한 소리는 분명히 좋다. 그러나...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새로운 고급형 유선 이어폰이 출시되면 짜릿한 흥분을 느끼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무덤덤하다. 본인이 14년째 정기적으로 휴대 음향 기기의 유료 리뷰를 하고 있는 인간이라서 그런 면도 있지만, 하이엔드 이어폰에 둔감해진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물리적이다. 아무리 소리가 좋은 이어폰이라도 길다란 케이블이 달려 있어서 불편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무선 이어폰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옷에 툭툭 닿는 케이블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수백만원대 이어폰을 리뷰할 때에는 놀라운 소리에 깊이 감동하지만 리뷰가 끝나고 제품을 반납한 후에는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을 꺼낸다. 이런 행동 방식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휴대 음향에서 유선 이어폰과 헤드폰을 중시하는 매니아들도 이제는 무선 이어폰과 무선 헤드폰으로 이동하고 있다. 좋든 싫든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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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모바일 라이프 스타일과 휴대 음향 분야가 '무선 이어폰 헤드폰'으로 병합됐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무선 이어폰'은 생활 소품이면서 음향 기기를 겸하는 자웅동체의 성격을 지닌다. 비싼 이어폰에 관심 없던 사람들과 블루투스 이어폰에 관심 없던 음향 매니아들이 이제는 함께 무선 이어폰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본인의 생각을 풀어 본다면, 무선 이어폰에서 필요한 수많은 편의 기능은 점점 상향 평준화될 것이다. 그러나 소리 품질은 아직도 우선 순위에 들지 못했다. 노이즈 캔슬링 효과, 착용의 편안함, 무선 연결 안정성, 음성 통화 품질 등은 무선 이어폰 선택의 중요한 갈림길이 되지만 '소리 좋음?'이라는 질문에는 많은 혼란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유선 이어폰의 초창기에 그랬던 것처럼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도 유저들의 제품 사용이 증가하고 비교 청취가 시작되어야만 '소리 고급화'가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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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기능이나 디자인과 달리 소리 품질에는 높은 부가 가치를 붙일 수 있다. 현재 출시된 20~30만원대의 고급형 무선 이어폰들을 생각해보자. 청음 매장에서 이런 제품들을 비교 청취해보고 있는데,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리가 굉장히 좋게 들려오는 무선 이어폰이 있다면 우리는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을까. 블루투스 규격에서 하이파이 사운드를 내는 것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본인은 언젠가 100만원대를 찍는 무선 이어폰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다. 무선 이어폰은 분명히 음악 감상용이지만 음성 통화를 겸하는 생활 소품이다. 생활 소품을 여러 개 구입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비교 청취도 하지 않을 터이니 그만큼 소리 고급화도 느려질 확률이 높다. 대충 짐작한다면 무선 이어폰도 스마트폰처럼 한 개만 주기적으로 기변하는 스타일이 대세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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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G N400을 두 달 가까이 사용하면서 느낀 점은, 이 20만원 초반의 노이즈 캔슬링 무선 이어폰에서 '소리 고급화'의 징조를 보았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무선 이어폰에 들어가는 '드라이버의 고급화'가 먼저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다. 무선 이어폰은 아주 작은 하우징 속에 온갖 기능을 담아야 하므로 물리적 음향 구조를 최적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급형 유선 이어폰에서 볼 수 있는 다수의 밸런스드 아머처(BA) 드라이버나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회로는 무선 이어폰에 넣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다이내믹 드라이버든 밸런스드 아머처 드라이버든 풀레인지 한 개만 넣는 것이 최선이겠다. 잘 하면 고음 드라이버와 저음 드라이버가 한 개로 붙어 있는 듀얼 밸런스드 아머처 드라이버를 담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사운드 개발의 제한이 많은 분류가 무선 이어폰이다.

 

N400은 AKG가 유선 이어폰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고품질의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담고 있다. 이 제품은 주변 소리와 상쇄 음파가 균형을 이루는 노이즈 캔슬링을 제공하며 터치 패드 컨트롤과 착용 감지 센서 등을 갖춘 편리한 무선 이어폰이다. 그런데 더 좋은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담았고 더 세심하게 사운드 튜닝을 받아서 다른 무선 이어폰들과 어느 정도 차별화될 정도의 좋은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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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G만 이런 것도 아니다. 유선 이어폰 IE800부터 놀라운 소리 해상도를 지닌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선보인 젠하이저가 모멘텀 트루 와이어리스 시리즈에서 좋은 소리를 내는 것도 그렇고, 이어폰에서도 특유의 차가운 음색을 보여주는 뱅앤올룹슨 역시 E8 시리즈로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다. 이런 회사들은 드라이버 고급화를 통해서 더욱 비싼 무선 이어폰을 내놓을 수 있다. 예를 들면 AKG에서 다른 국가의 드라이버 제조사와 협력하여 베릴륨 진동판 드라이버를 채용하고 'AKG N1000'이라는 이름의 70만원짜리 무선 이어폰을 출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N400은 상징적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애플 에어팟 프로가 노이즈 캔슬링 무선 이어폰의 기준점이 되었다면 AKG N400은 무선 이어폰 사운드의 새로운 단계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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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른 글로도 언급했지만 N400의 다이내믹 드라이버 진동판은 상당히 오랜 사용 후부터 안정화되면서 소리 질감이 크게 향상된다. 본인의 경우는 20시간 정도의 음악 재생 후 감지하게 됐는데, 새것 시절에서는 고.중음 영역의 밀도가 조금 낮고 입자가 거친 느낌이 있었으나 이제는 비단결처럼 매끄러운 질감과 높은 밀도를 보인다. 일반적 볼륨으로 음악을 오랫동안 들으면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굉장히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이 올 것이다. 이것은... 고급 유선 이어폰을 쓸 때 느끼는 만족감과 같다. 새것일 때는 '이 정도면 좋다'는 생각으로 만족했으나 현재는 '이거 완전 좋잖아 엉엉엉'이라는 생각으로 격렬하게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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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것일 때에는 적당히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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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이 되고 나면 울면서 만족하게 된다."

 

이는 드라이버 진동판의 노화가 아니라 진동판 또는 진동판 테두리의 굳은 부분이 풀리면서 제작자가 원래 추구한 소리가 나오는 현상이라고 한다. 에이징(Aging)이 완료되면 소리가 그대로 정착된다. (*오디오 애호가용 헤드폰 중에서는 별도의 방에서 드라이버 에이징과 좌우 매칭을 진행한 다음 판매하는 제품도 있다.) 본인의 경우는 오래 전에 음향 기기 리뷰를 시작해서 10년 넘게 보관해온 다이내믹 드라이버 이어폰도 많다. 다들 오래 사용해서 에이징이 완료됐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꺼내어 동작 확인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변함없는 소리를 들려준다. AKG N400도 꾸준히 배터리 충전만 챙겨주면 10년 넘게 그대로일 것이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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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 10년이겠어~' 이렇게 의심해도 좋다. N400은 피지컬 수준에서도 10년 넘게 버틸 것임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폴딩 자전거의 앞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자전거가 옆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가방 속에 담아두었던 앱솔루트 보드카 750ml 병이 N400의 충전 케이스를 강타했다. (도대체 무슨 맥락의 사고인 것이냐...) 플라스틱 충전 케이스였다면 분명히 깨졌을 것이다. 그러나 N400의 금속 덩어리 케이스는 한 쪽 귀퉁이가 찌그러지는 것으로 끝났고 지금도 여전히 잘 동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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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400으로서는 대충 이런 느낌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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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뚜껑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세게 찍혔지만 기능과 소리는 지극히 정상이다."

 

이 후기는 두 달 전에 AKG N400의 유료 리뷰를 진행한 후 판매처에서 한 달 사용기를 요청하며 제품을 제공해주었기에 성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자 제품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기능이나 사용 경험이 변하지는 않는다. N400도 정식 리뷰에서 다루었던 많은 점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드라이버의 에이징 효과로 소리가 더욱 좋아졌다는 점만 다르다. 그래도 한 가지는 체크해둬야겠다. 이어폰의 펌웨어 업데이트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은 5월이 다 끝나도록 펌업을 하지 않았다. 무선 이어폰, 무선 헤드폰 중에서 돌이킬 수 없는 펌웨어 업데이트로 음색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제품 보완 서비스가 되겠으나 각자의 소리 취향을 지닌 청취자 입장에서는 강제적 변화가 된다. 애플 에어팟 프로는 출시 첫 날에는 몹시 포근하고 부드러운 중.저음형 이어폰이었으나 펌업 이후 고음이 밝아졌다. 보스 NC700 헤드폰은 처음에는 보스 헤드폰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음이 화려했으나 펌업을 몇 차례나 거치더니 일반적인 중.저음형 보스 헤드폰으로 돌아왔다. 펌웨어 다운그레이드가 불가능하므로 둘 다 출시 당시의 소리로 돌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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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업... 하지 않겠는가... 아, 이미 해버렸군."

 

그래도 롱텀(Long-term) 리뷰를 요청 받은 입장인데 펌웨어 업데이트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결국 5월 31일 밤에 펌웨어 3.8.0으로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N400의 펌업은 소리나 기능을 크게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패치 업데이트 정도로 보인다. 업데이트가 수동 방식이므로 현재 3.6.0 버전에 만족하고 있다면 굳이 업그레이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뭔가 보완된 점이 있을 테니 업그레이드를 해두는 것도 좋겠다.

 

펌업 이전의 N400과 펌업 이후의 N400을 동시에 비교 청취하지 않는 한 변경된 점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냥 간단한 의견 정도로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3.8.0 펌웨어는 N400의 소리를 건드리지 않은 모양이다. 하만 타겟 곡선에서 중음만 보강한 듯한 사운드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펌업 후에도 거의 그대로다. 만약 이 소리를 잃게 된다면 정말 속상할 것이다.

 

그 외에도 노이즈 캔슬링이 앱 화면의 오른쪽 60~70% 영역에서 가장 강력하며, 터치 패드 사용에서 손 끝으로 짧게 문지르는 연습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 유튜브나 넷플릭스 감상에서 배우의 입 모양과 목소리가 잘 맞는 점이 모두 예전과 동일하다. (*소리 지연 속도는 이어폰을 페어링한 기기와 비디오 앱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는 듯하다. 본인이 iOS 기기들과 함께 사용 중인 N400은 체감되는 소리 지연 현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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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이 물건이 제법 많이 판매됐으므로 한 달 넘게 사용 중인 유저도 많을 것이다. 제품 불량 때문에 교환 받은 사례도 간혹 보이는데 이 점은 계속 나아질 것이라 짐작한다. (*본인이 받은 리뷰용 N400은 밀봉된 새 제품이었으므로 일명 Golden Sample은 아닐 것이다.) 두 달 동안 사용해본 결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단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충전 케이스가 튼튼하지만 꽤 두껍고 묵직해서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는 힘들다. 열쇠 고리나 캐러비너로 허리춤에 매달고 싶은데 아직은 써드파티 회사들의 케이스 액세서리를 찾기가 힘들다. 갤럭시 버즈 플러스처럼 다양한 케이스 액세서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둘째, 배터리 사용 기간이 짧은 편이다. 이어폰 자체는 노이즈 캔슬링을 켜두어도 4~5시간을 쓸 수 있으니 괜찮지만 충전 케이스는 5시간 정도만 더해주는 용량이라서 며칠 후에 방전된다. 그래서 3~4일에 한 번 정도는 케이스 배터리를 충전해줘야 한다. 하지만 준수한 노이즈 캔슬링과 각종 편의 기능을 제공하면서 소리가 훌륭한데 가격이 20만원대 초반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추천할 수 있는 무선 이어폰이다. 이것이 AKG N400을 두 달 동안 사용해본 후의 결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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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해당 브랜드의 제품 제공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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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Rise SunRise님 포함 2명이 추천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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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를 접해본 유저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은 코드리스라 생각합니다 ㅎㅎ 저도 그저께 사서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헤드폰 쓰기 어려운 올 여름은 이걸로 버텨야지요!
12:32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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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재밌네요 ㅋㅋ 
 잘 읽었습니다.

13:14
20.06.04.

빠떼리가 10년을 못가는게 문제죠

16:54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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