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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도 SR80e (L-쿠션의 효과)

루릭 루릭
3245 1 4

(


그라도(Grado)는 수십년 동안 미국 브루클린의 작은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LP 카트리지와 헤드폰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지금까지도 동일한 딜러를 통해서 판매되고 있는데요. 작년 4월부터 청음 매장에 입점하면서 많은 분들이 그라도 헤드폰의 소리를 직접 비교 청취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독자분의 소장품을 빌리거나 제품 리뷰를 하면서 대부분의 그라도 헤드폰을 충분히 사용해봤으나, 정작 그라도를 헤드폰 브랜드로 정착시켜준 SR60, SR80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음 매장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SR80e의 소리에 많이 실망했습니다. (=_=)...


분명히! 그라도 특유의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소리 해상도가 낮고 질감이 거칠게 들렸습니다. 그 상태로 다른 그라도 제품들을 비교 청취하다가 GH2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위시리스트에 넣은 후 잊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GH2도 저에게는 너무 비쌉니다...)



그런데, 6월부터 시작된 무더위 때문일까요? 카페에서 타이핑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라도 헤드폰의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이죠. 또한 예전 비교 청취의 기억도 되짚어 보았습니다. 분명히 그라도 헤드폰 소리였는데 왜 SR80e는 제 기준에 충족하지 않는 느낌을 주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꺼운 S-쿠션이 소리를 막고 있어서 그렇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네, 이어패드의 선택은 헤드폰 제작자가 사운드 튜닝을 하면서 중요하게 결정한 것입니다. 존 그라도의 청음에 따라서 S-쿠션이 SR80e에 적합하다고 결론 내렸을 터입니다. (*존 그라도님은 LP 레코드로만 청취 테스트를 하십니다.) 하지만 유저가 제작자의 결론을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직감 하나만 믿고 매장으로 달려가서 SR80e와 L-쿠션을 사왔습니다. 헤드폰이 16만원대이고, 발포 스티로폼 한 쌍이 6만원대입니다. 그래도 저는 20만원대 초반의 헤드폰 한 대를 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헤드폰을 집으로 가져오자마자 L-쿠션으로 교체하고 음악을 틀어보았습니다. O! M! G! 완전 제 취향 적중입니다. 첫 인상부터 정말 좋아서 이건 진짜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현재 S-쿠션으로 SR80e의 소리를 듣고 있으며 충분히 만족한다면 지금 제가 쓰는 글은 안 보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L-쿠션 구입과 교체가 이 헤드폰의 소리를 크게 향상시킨다고 생각합니다. 발포 스티로폼 한 쌍에 6만원 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은 SR80e에 기본 장착되는 S-쿠션입니다. 말랑한 도넛 같은 느낌이고요. 별도 구입하면 3만원대 초반이 됩니다. S-쿠션은 L-쿠션보다 높이가 낮은 대신 두터운 폼으로 진동판 앞을 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라도 헤드폰 중에서는 귀가 가장 편안한 이어패드가 됩니다. S-쿠션의 푹신한 폼은 헤드폰의 굉장히 가벼운 무게(케이블 포함해서 200g 초반)와 어우러져서 아주 오랫동안 착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폼의 통풍 효과 덕분에 여름에도 시원한 편이고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제 주관에 의하면, S-쿠션은 SR80e의 소리 잠재력을 봉인하고 있습니다. 그라도 헤드폰들은 이어패드 교체가 굉장히 쉬우므로 즉시 교체해봅시다. 그냥 당겨서 빼낸 후 눌러서 끼우면 됩니다.



왼쪽이 S-쿠션, 오른쪽이 L-쿠션입니다.



참고로 그라도의 블루투스 헤드폰 GW100도 S-쿠션을 쓰는 모양입니다. 쿠션 이름이 다른 듯한데 아마도... 호환될 겁니다. 호환될 거에요. 그렇다는 것은, GW100도 L-쿠션을 장착해서 비교 청취해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매장으로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 GW100은 WS-쿠션을 사용하는데 S-쿠션보다 안쪽 구멍 지름이 훨씬 큽니다. 호환되지 않으니 참조하시길...!

- 하지만... 쿠션이 쭉쭉 늘어나므로 GW100에 L-쿠션을 끼워서 쓸 수는 있습니다!



또 하나 참고할 점은, 헤드폰의 이어패드는 소리에 매우 큰 영향을 주므로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제가 강력 추천하는 SR80e와 L-쿠션의 조합이 SR60e에서는 좋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전에는 GS1000i에 G-쿠션 대신 L-쿠션을 끼워본 적도 있는데요. 지축을 흔드는 저음 때문에 감상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반대로 RS1e에 G-쿠션을 끼우면 저음이 줄어들고 고음이 강해져서 더욱 희한한 소리가 됩니다.


BUT!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SR80e와 L-쿠션의 조합은 아주 좋습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뷰티풀한 앙상블입니다.



SR80e의 드라이버는 기본적으로 고음 강조가 있어서 치찰음이 살아나는 편입니다. 이것을 두터운 필터 역할의 S-쿠션으로 보정하는 것인데요. 그만큼 헤드폰의 소리를 듣기 편하게 만들지만 해상도와 개방감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L-쿠션으로 교체하여 드라이버 진동판을 개방하면 이 고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소리의 해상도가 무척 높으며 금속 악기들의 감촉이 차가운 가루가 되어 고막에 뿌려지는 느낌입니다. 제가 L-쿠션 교체된 SR80e를 몹시 좋아하는 이유는 거칠고 자극적인 고음이 아니라 본래부터 시원하고 듣기 좋은 청량 음료 같은 고음이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어패드 속으로 갇히던 소리의 일부가 크게 개방되면서 물리적인 공간감의 향상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어패드 교체에서 제가 느끼는 단점은 딱 하나입니다.


착용감이 극적으로 나빠집니다. (=_=);; 진동판 앞의 방충망 같은 필터가 귓바퀴에 눌리거든요. 오랫동안 편하게 쓰시려면 S-쿠션을 그대로 쓰세요.



*참고 : 이 감상평은 약 5시간 정도 듣고 쓴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이내믹 드라이버들이 그러하듯, 오랫동안 사용해서 진동판이 안정되면 고음의 치찰음 강조가 줄어들고 저음 울림이 더욱 부드러워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이런 고음 쪽의 향상과 더불어서 SR80e가 지닌 그라도 헤드폰의 본질적 장점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커다란 파이프 하우징 속에서 풍부하게 울리는 저음이 특별한 공간을 형성하는데 이게 참 듣기 좋습니다. 낮은 중음 쪽도 선이 굵고 가까워서 보컬과 현악기 소리가 충실하게 들립니다. L-쿠션 교체는 이런 중.저음의 효과를 지키면서 선명하고 시원한 고음을 더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L-쿠션으로 교체해서 SR80e가 20만원 초반의 헤드폰이 되어도 50~60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여기에서 짚어둘 점이 있습니다. 청음 매장에는 없지만 다른 국내 판매처에서 30만원대 초반의 SR225e를 살 수 있는데요. 이 헤드폰은 L-쿠션이 기본이며 플라스틱 하우징에 메탈 그릴을 더한 물건입니다. L-쿠션을 별도 구입하는 SR80e보다 SR225e를 고르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단, SR225e는 중.저음이 더욱 강하며 대체로 부드러운 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리고 케이블이 무척 굵기 때문에 아무래도 휴대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알루미늄 하우징을 사용하는 SR325e는 제가 예전에 구입해서 후기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사용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반값에 팔아버렸는데 지금은 후회 중입니다. ( ㅠ _ㅠ) ■


*예전에 쓴 SR325e 후기

http://luric.co.kr/22027753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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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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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간만에 그라도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청취테스트를 LP로 한다니...  
자기가 만든 카트리지로 재생해서 자기가 만든 헤드폰으로 듣고...?

18:10
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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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릭 작성자
idletalk
인터뷰에서 봤는데 존 그라도는 다른 회사 헤드폰도 청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소리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 그라도의 사운드 시그니처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변화하지 않는 헤드폰 구조와 더불어서 통일된 음색도 이 회사의 자산이 되겠습니다.
05:41
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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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릭 작성자

*다른 분께서 GW100의 WS-쿠션과 S-쿠션의 차이를 확인해주셨기에 내용에 더하려고 했는데 '댓글이 달린 글은 수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나오네요. 
  
GW100은 WS-쿠션을 사용하는데 S-쿠션보다 안쪽 구멍 지름이 훨씬 큽니다. 호환되지 않으니 참조하시길...!

05:39
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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