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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초고가 헤드폰에서 사용되는 공기 흐름 조절 기술

루릭 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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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조만간 국내에 들어오게 될 수백만원대 헤드폰 속의 부품 중 하나입니다. 육각형의 구멍이 잔뜩 뚫린 모습인데요. 미국의 '댄 클락 오디오(Dan Clark Audio)'에서 공개한 하이엔드 헤드폰 '스텔스(Stealth)'의 AMTS 기술이라고 합니다. Acoustic Metamaterial Tuning System의 약자로,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의 진동판 앞에서 공기 흐름을 세밀하게 조절해줍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AMTS가 메타 물질(Metamaterial)이라는 사실입니다. 과학 뉴스를 즐겨보는 분이라면 군사 목적의 투명 망토(?!)에서 빛의 파장을 바꾸는 신기술로 메타 물질이라는 단어를 접하셨을 겁니다. 공각기동대의 광학 미채(광학 위장)가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댄 클락 오디오는 고가의 헤드폰에서 소리를 좋게 만들기 위해 음파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메타 물질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슨 뜻인고 하니... 메타 물질의 소재는 일반적인 금속이나 플라스틱 등이며 크립토나이트(...)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일반 소재를 복합적 구조 또는 패턴으로 만들어서 자연의 물리 법칙에 반하는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댄 클락 오디오 스텔스에 처음 탑재된 메타 물질 - AMTS는 헤드폰 드라이버에서 나오는 소리를 제작자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게 해줍니다. 고음의 스탠딩 웨이브를 제거하여 깨끗하게 만들고, 육각형 구멍의 폭과 깊이 등이 모두 소리에 작용하여 고음 영역의 상세한 튜닝이 가능하답니다. 즉, 드라이버에서 나오는 소리도 선명해야 하지만 그 소리를 유저의 귀로 전달하는 중간 과정의 물리적 조절도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이파이 오디오의 스피커들에게 공기 흐름이 극히 중요한 것처럼 말이죠.


저는 요즘 나오는 400~500만원대 또는 그 이상의 초고가 헤드폰들이 기술적 돌파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기 흐름 조절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초고가 헤드폰들이 비싼 가격에 걸맞은 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소리가 곧 공기 흐름의 현상이지만, 지금 말씀 드리는 점은 유저가 듣는 최종 소리를 좋게 다듬기 위해서 사용되는 공기 조절을 뜻합니다. 소리의 명료도를 높이기 위해서(왜곡율을 낮추기 위해) 불필요한 공기 흐름을 제거하거나 의도적으로 긍정적 흐름을 창조하는 방식입니다.

위의 도안은 일본의 '파이널(Final)'에서 D8000이라는 하이엔드 헤드폰에 사용한 기술을 보여줍니다. AFDS, 즉 에어 필름 댐핑 시스템(Air Film Damping System)이라는 것으로,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속에서 진동판 앞 뒤에 마그넷 어레이를 배치하고 그 사이에 '공기의 막'을 형성합니다. 극히 얇은 금속판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서 자석 사이에 두는 것으로 에어 필름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는 미크론 단위의 얇은 진동판을 사용합니다. 이 진동판이 초저음을 재생할 때 크게 흔들리면서 자석에 충돌할 수 있는데 공기를 완충재로 써서 균일한 진동이 됩니다. 그 결과는 매우 낮은 왜곡율과 매끈한 형태의 주파수 응답을 지닌 수백만원대의 소리입니다.


위의 사진으로 보이는 헤드폰은 국내 가격이 무려 900만원대에 이르는 'T+A 솔리테어 P'입니다. 저도 직접 사용해보면서 경외감을 겪을 정도로 굉장한 소리에 놀랐는데요. 이 제품도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를 사용하는데, 진동판의 바깥쪽에만 마그넷 어레이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마그넷 어레이가 얇은 막대 모양으로 되어서 마치 비행기 날개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겁니다. 진동판의 후면이 크게 개방되면서 다수의 얇고 넓은 금속 패널이 공기 흐름을 조절해줍니다. 이 설계로 방대한 면적의 진동판에 고른 자기장을 펼쳐주며 공간감까지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라서 많은 헤드폰 애호가들이 지름을 시도해보지만 가격도 너무 충격적이라서 T+A는 알뜰한 반값(...)의 솔리테어 P SE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솔리테어 P SE도 놀라운 고해상도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드라이버가 약간 다운그레이드되어도 헤드폰의 이어컵 구조가 동일하니 솔리테어 P의 공기 흐름 조절 효과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헤드폰 분야에서 큰 형님과도 같은 '오디지(Audeze)'는 어떨까요? 이들은 수 년 전부터 페이저(Fazor)라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동판 앞 뒤에 놓이는 마그넷 어레이에서 자석의 뒷부분을 뾰족하게 다듬는 설계입니다. 이로 인해 진동판의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이 서로 겹치지 않고 깨끗하게 이어진다고 합니다. (T+A는 이 부분을 아예 얇은 날개처럼 만든 셈) 조만간 국내 출시될 오디지의 새로운 하이엔드 헤드폰 LCD-5는 이 페이저 기술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모양입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페이저가 적용된 자석 막대의 간격이 훨씬 넓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이어컵 내부의 공기 흐름을 조절하는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헤드폰들은 대형 진동판에서 풀레인지를 재생합니다. 이 점에서 루마니아의 '메제 오디오(Meze Audio)'는 다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리나로(Rinaro)'라는 회사에서 드라이버를 개발하는데, 이들은 메제 엠피리언과 메제 엘리트 헤드폰에서 다음과 같은 구조의 진동판을 탑재했습니다.

트위터, 미드 레인지, 우퍼 등으로 고.중.저음이 분리된 라우드 스피커에서 트위터 부분을 뒤쪽으로 밀어내는 경우가 보입니다.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톨보이 스피커)의 인클로저가 뒤쪽으로 누워있는 모습인데요. 고.중음과 저음이 사람에게 도달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음 영역이 동일한 타이밍에 도달하려면 각 음 영역이 시작되는 위치를 조절해야 한다는 게 기본적 논리입니다. 그러나 풀레인지 드라이버 한 개로만 재생하는 헤드폰에서는 그런 물리적 배치를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는 진동판이 매우 넓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 귓바퀴보다도 진동판이 더 큽니다. 그래서 리나로의 진동판은 위쪽이 저음, 아래쪽이 고음을 재생하도록 보이스 코일을 분리 배치합니다. 위의 도안에서 파랑색이 저음 영역, 노랑색이 고.중음 영역인 것입니다.

그 결과 메제 엠피리언과 메제 엘리트는 별도의 웨이브 가이드 부품으로 공기를 움직이지 않아도 고.중.저음을 적확한 타이밍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라고 메제 오디오에서 제안함) 그리고 두 헤드폰을 모두 리뷰했던 저의 느낌에도 그 효과는 굉장했습니다. 드라이버 자체에서 주파수 응답 조절을 완료하고 있으니 메제 엠피리언과 엘리트는 이어컵이 얇아졌으며 필터나 댐퍼 부품으로 공기 흐름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제가 지금까지 소개한 초고가 헤드폰은 모두 다른 소리를 낼 것입니다. 400~500만원대를 넘어서면 공통적으로 플랫 사운드에 저음만 보강하는 성향이 보이지만, 각 회사마다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다르니 결과물도 다릅니다. 이를테면 댄 클락 오디오는 매우 정밀하고 샤프한 고음과 빠른 응답의 중.저음을 추구하며, 오디지는 선이 두텁고 밀도가 높은 중음과 든든한 초저음을 개성으로 지닙니다. 현재까지 파이널 D8000, 솔리테어 P, 메제 엘리트 등은 리뷰로 사용해봤고... 지금은 댄 클락 오디오 스텔스와 오디지 LCD-5의 소리를 기대하며 쫄깃한 마음으로 지내는 중입니다. 이웃에 피해 주지 않고 혼자 감상할 수 있는 퍼스널 오디오 - 헤드폰의 세계에서도 진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


*댄 클락 오디오 스텔스

https://danclarkaudio.com/dcastealth.html


*파이널 D8000

https://snext-final.com/en/products/detail/D8000


*T+A 솔리테어 P

https://www.ta-hifi.de/en/musicreengineered-solitaire-p/


*오디지 LCD-5

https://www.audeze.com/products/lcd-5


*메제 오디오 엘리트

https://mezeaudio.com/products/elite


*참고로 말씀 드리는 의견 : 스피커, 헤드폰, 이어폰은 각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스피커는 오디오룸 감상이고, 헤드폰은 헤드룸 감상이며, 이어폰은 인이어 감상입니다. (Audio-room, Head-room, In-Ear) 스피커는 공간과 현장감이 있고, 헤드폰은 그 공간과 현장감을 머리 근처로 소환하며, 이어폰은 소리를 외부 소음 없이 고막에 가깝게 끌어당겨줍니다. 그래서 각 분야별로 주관적인 가격 대입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헤드폰 시스템의 총 견적이 2천만원을 넘는다면 1~2억원대 스피커 시스템의 경험을 머리에서 전해줘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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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 루리님 포함 9명이 추천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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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감사합니다. 스텔스 정발하나보네요
11:54
21.10.29.

잘 봤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얘기였습니다.
물론 구매하거나 들어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ㅠㅠ

12:26
21.10.29.
좋은 글 재미지게 보고갑니다.
13:50
21.10.29.

시간이 흘러 살만한 제품들에도 저런 기술들이 적용되길 기대해봐야겠네요.

13:55
2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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